[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자] 11월11일. 한국은 '빼빼로 데이', 중국은 '광군제(光棍節)'. 한쪽은 바가지를 씌우는 날. 한편은 대박 세일로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날.
사실 상당수 소비자들은 무슨 무슨 날이 괴롭기만 하다.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 데이에 초콜릿이나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와이프, 아이,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기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빼빼로를 사줬지만 마트나 편의점마다 펼쳐진 과대 포장된 초콜릿 매대를 볼 때마다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마다 바가지 상혼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좀처럼 바뀌는 모습은 엿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11월11일에 한국의 기업들이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더 빼내려 애쓰는 사이 중국에서는 같은 날 전 세계적인 쇼핑 대목이 벌어져 왕서방들이 뭉칫돈을 긁어 모았다.
이는 알리바바라는 전자상거래 업체가 불과 6년 전에 만들어낸 대규모 할인 이벤트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알리바바만 하루 판매액이 571억1218만위안(약 10조2000억원)이나 되는 전 세계인이 기다리는 쇼핑 축제가 됐다. 광군제 매출은 이미 지난해에 북미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먼데이 매출을 두 배 이상 뛰어넘었다.
한국 유통업체들이 초콜릿 대목을 노리던 날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馬雲)회장은 다른 생각을 했다. 소비자를 '호갱'으로 본 게 아니라 저렴하게 물건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광군제는 있었다. 그러나 잠재성을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 것은 알리바바였다.
이제 몸이 달은 것은 알리바바의 경쟁사들이다. 알리바바의 미국 경쟁사 아마존 뿐 아니라 한국의 기업들도 광군제 특수에 편승하기 위한 전략을 짜내는 데 골몰했지만 알리바바의 성과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번 광군제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들의 주문이 몰리며 블랙프라이데이, 사이버먼데이로 대변되던 사이버 쇼핑의 축마저 중국에 넘겨줄 처지다.
알리바바의 영민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트위터를 통해 이날 판매액에 대해 실시간으로 속보를 날렸다. 판매 개시 38분 만에 100억위안(약 1조8000원)을 넘어섰다는 식의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마윈 회장은 외신기자들을 불러 미국 안방의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고 이날 행사에 대해 소개했다. 마 회장의 발언은 이날 미국 주요 경제 매체들이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런 노력도 상당한 효과를 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의 주가는 개장 직후 발표된 호재를 발판 삼아 4%나 급등하는 효과를 봤다. 이날 하루 늘어난 시가총액만 12조3000여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각종 매체를 통한 보도 경쟁은 알리바바의 이름을 또 다시 소비자들의 뇌리에 새겨 놓았을 것이다. 그 효과는 측정 불가능이다.
심지어 우리가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규제 완화를 고민하는 순간 그들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알리바바가 애플이 선보인 결제서비스인 애플페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제안까지 내놓고 있다.
삼성과 애플을 물리친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를 비롯해 알리바바까지, 단순히 인구가 많고 규모가 뒷받침 된다는 것만으로는 중국 기업의 성공을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샤오미나 알리바바와 같은 과감한 혁신 전략을 준비했는지 스스로 뒤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올해 광군제는 잘 보여주고 있다.
11월11일 화려하게 치장된 서울의 초콜릿 매장과 쏟아지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상반된 모습이 남긴 숙제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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