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신해철 사망 두고 의료사고에 관심 급증...의료사고 피해자들 제도적 문제·의료기관 무책임 행태에 분노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전문 의료 지식이 없는 환자로서는 절대 의사를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법을 아무리 만져도 소용 없을 것이다."(의료사고 피해자 A씨(42세ㆍ남))
최근 고(故)신해철씨가 만 46세의 젊은 나이에 수술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씨만 해도 유명인이었던 덕분에 어느 정도 진상이 규명되고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 멀쩡하던 사람이 수술대에 누웠다가 의료진의 실수로 생명을 잃어도 변변한 진상 규명ㆍ손해 배상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아시아경제신문과 인터뷰한 의료사고 피해자ㆍ가족들은 현행 의료사고와 관련된 제도적 문제와 의료 기관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초 백내장이 있다는 진찰 결과를 받고 자택 인근 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던 직장인 A(42)씨는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의 실수로 30분 만에 끝날 수술을 3시간 넘게 받으면서 큰 고통을 받았다. 간호사가 실수로 수술도구를 소독하지 않았다며 A씨를 2시간여나 방치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수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응급 봉합 정도로 끝났고, 의사는 "전문 병원을 소개시켜주겠다. 내가 모든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다른 병원을 안내해줬다.
수술이 끝난 후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시력 저하ㆍ어지러움증 등 후유증에 시달린 A씨는 결국 다음날 의사가 소개시켜 준 다른 병원에서 수정체 조각 제거 및 유리체절제술 등 이틀에 걸쳐서 눈 수술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그 후 한동안 사물을 볼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껴 운전을 못하고 다리를 헛짚는 등 고통을 당했다. A씨는 이후에도 시력 회복을 위해 눈 수술을 3회나 더 받았다.
문제는 이같은 피해를 당했음에도 제대로 된 손해 배상을 받을 길이 막혀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정부기관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려 했지만 담당 손해사정인으로부터 "과실 병원에서 채무 부존재로 역소송을 걸면 재산이 가압류 되는 등 오히려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차마 신청서를 접수할 수가 없었다.
또 소송으로 갈 경우 병원은 보험으로 처리하면 되지만, 피해자의 경우 자비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고 재판정과 경찰서를 오가는 등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중반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병원측에 합의서를 써주고 말았다.
A씨는 "처음엔 병원 측이 수술 중 실수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가 언론 보도ㆍ고발 등의 조치를 언급하자 나중에서야 약간의 손해배상금을 주면서 무마를 시도했다"며 "의사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얘기를 하려니 의료진의 실수를 환자가 알아내야 하는 지 답답한 마음만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특히 "현행 제도하에서는 환자가 철저한 약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의사와 병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다"며 "7~8개월 간 일을 하지 못해 생계에 막대한 지장이 생겼는데도 병원 측은 법무담당 직원만 동원해 '배쩨라'는 식으로 나왔고 중재원 등 정부 기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B씨의 경우 지난 2011년 건강 검진차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간 어머니가 침상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후 4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지만 병원 측이 책임을 회피하면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상태다.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검사를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는 다음날 침대에서 뇌줄중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던 것이다.
B씨는 병원 측의 미비한 검사와 방치, 뒤늦은 수술 등으로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우리 잘못은 없다. 법으로 해결하려면 해라"며 법무팀 직원 외에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B씨는 "왜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던 우리가 갑자기 병원 측에게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소송이나 조정을 신청하려고 해도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가족들 처지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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