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 "전단=최고존엄 모독행위로 분석"
[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북한이 또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남한 정부가 나서서 중단 살포를 중단하지 않으면 남북대화는 없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달 10일까지 북한이 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2차 고위급 접촉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왜 북한은 전단에 목을 매는 것일까?
◆조평통 "삐라 살포하는 자들과 대화 꿈도꾸지 말라"=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1일 성명에서 탈북자단체가 지난달 31일 경기도 포천에서 대북전단 100여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보낸 사실을 거론하고 "위임에 따라 남조선당국에 중대입장을 천명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성명은 "삐라(전단)살포문제는 단순히 제2차 북남고위급접촉과 관련된 문제이기 전에 우리의 최고존엄과 관련된 중대문제"라면서 "그것은 회담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담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본질적이며, 중핵적인 문제"라고 강조햇다.
그러면서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자들은 그가 누구이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석같은 의지이고 확고부동한 원칙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평통은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삐라살포망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비호, 두둔, 조장하는자들과 그 무슨 대화를 하고 북남관계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다"면서 "남조선당국은 삐라살포망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와 마주앉아 대화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밝혔다.
이 같은 성명 내용은 대북전단 살포의 중단이 남북간 대화의 전제 조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이달 초가 개최 시한인 2차 고위급접촉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조평통은 또 "남조선당국은 우리 혁명무력이 삐라살포놀음을 벌리는 경우 기구조준타격은 물론, 그 본거지타격과 배후지휘세력 타격까지 선포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삐라살포망동에 가담한 범죄자들을 온 민족의 이름으로 단호히 심판, 처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성명은 무엇보다 "남조선당국이 그것도 못하겠다면 우리는 인간쓰레기들을 단호히 쓸어버리기 위한 처단작전을 단행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성명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삐라살포행위는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전쟁행위"라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국제사회에 고소해 강력한 규탄여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국제 여론전을 펼칠 것임을 예고했다. 성명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자기의 사명을 올바르게 이행하려면 응당 남조선의 공화국에 대한 엄중한 적대행위를 문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 "전단='최고존엄 위협'"=북한 당국이 대북 전단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고,살포차 처단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전단을 위협 요소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부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대북 삐라는 북한에 변화를 일으키느냐와 상관없이 과거 대북방송과 대북 확성기에 이은 심리전의 하나의 수단이었으며, '효율성'이 낮다는 게 문제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일 "민간이 살포하는 대북 전단은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면서 "많지는 않아도 북한의 전방부대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북한군은 10년을 복무하는 만큼 최고지도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전단을 볼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과거에는 전단이 떨어지면 쉬쉬하면서 전단을 넣은 비닐봉지에 든 1달러 지폐를 부대가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 언론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보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김정은이 '노발대발'하면서 북한 당국도 강공으로 돌아선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탈북자 단체인 북한자유운동연합이 최근 북한으로 날려보낸 대북전단에는 '김정일' 가계도와 함께 남한 체제의 우월성과 북한 체제 실패 이유, 북한 인민들이 속고 살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이를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
이라고 규정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평통 성명이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자들은 그가 누구이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석같은 의지이고 확고부동한 원칙적 입장"이라고 밝힌 것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2차고위급 무산 거의 확실시=조평통의 성명은 남북대화의 공을 다시 남쪽으로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성명은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삐라살포망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비호, 두둔, 조장하는자들과 그 무슨 대화를 하고 북남관계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즉 남한 정부가 삐라살포를 제지하지 않는다면 대화나 남북관계 개선은 없다는 것이다. 즉 남한 정부에 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달렸다는 것이다.
남북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핑퐁게임'을 벌여왔다. 북한은 6월부터 남북대화를 제기해 공을 남한 쪽으로 던지면서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8월11일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의하며 공을 북측으로 던져 다시 주도권을 가져왔다.
그러나 북측은 지난 4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고위급 3명을 보내 10월 말이나 11월 초 2차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전격 화답해 다시 공을 던지며 주권을 가져갔다.
이어 우리 정부는 28일 밤 전통문을 보내 "고위급 접촉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29일까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면서 다시 주도권을 가져왔다.
북한은 고위급 접촉에는 2주 넘게 침묵을 지키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북측은 대북 전단 살포를 남측이 중단시켰으면 고위급접촉에 응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게 안 됐으니 앞으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지루한 샅바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성명 내용도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라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체제는 최조존엄을 중시하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가치 충돌이 일어난 것"이라면서 "남북 간 기본합의서의 정신인 '상호체제 존중'이 없으면 대화는 어렵고 대화를 하더라도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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