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결과 통보 안 해줘 삭제대상인 줄도 몰라
방심위, 3년간 25만 건 시정 요구…99% 이행
이의신청 126건 불과, 수용된 것도 단 한 건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등에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올리는 게시물 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 요구에 따라 삭제되거나 차단되는 등의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으나 정작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들은 시정 요구를 받은 사실 자체를 몰라 이의신청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행정기관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게시물을 본인도 알지 못한 채 삭제해도 이의신청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는 것이다.
14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원식 의원(새정치연합·인천계양을)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위원회가 시정 요구한 게시물은 2012년 7만1925건, 2013년 10만4400건, 올해 8월 현재 8만289건 등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시정요구를 받은 네이버·다음 등 포털과 같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나 게시판 관리·운영자가 이행한 게시물은 2012년 7만1543건, 2013년 10만3109건(올해는 미집계)으로 99.1%에 달한다. 방심위가 시정 요구한 거의 모든 글이 삭제되거나 접속차단 등 '시정'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위원회의 시정 요구가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에게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게시물이 삭제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에 따르면 당사자는 15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게시물이 시정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지난 3년간 시정 요구를 받은 25만6614건 중 이의신청은 126건에 불과했다. 대상에 오른 건수 중 0.05%만이 이의신청을 한 것이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해 이의를 제기해도 거의 수용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시정 요구는 방심위 심의를 거치게 돼있고 심의 회의록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시정 요구를 전달받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에게 시정 요구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방심위는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의 영향으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포털 등 서비스 제공자에게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연락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방심위는 대통령 직속 민간기구로 시정 요구는 권고사안일 뿐 강제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명백한 국가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본인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국민의 글이나 게시물을 사실상 삭제하고 있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의신청 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다. 어렵게 자신의 게시물이 시정대상이 된 사실을 알았다 해도 앞의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시정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시정 요구를 받은 날 대신'이용자가 알거나 알 수 있었을 때'로 바꿔 당사자의 이의신청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 의원은 "이의신청 기한 확대 등 비교적 쉬운 제도 개선부터 시작해 방심위의 통신심의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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