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퇴진압박에 저항하던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백기를 들었다. 임 전 회장은 어제 변호인을 통해 배포한 입장발표문을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자신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대표이사 직무 집행정지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취소소송을 동시에 취하한다는 것이다. 등기이사직에서도 사퇴하기로 했다. 휴일인 어제 이런 입장발표를 한 것은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의 심문 절차가 오늘 개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소송을 계속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KB금융 사태가 일단락됐다. 임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갈등이 표면화한 지난 4월 이후 5개월 만이다. 그러나 그 뿌리가 애초 배경과 연줄이 다른 두 사람이 낙하산 인사로 각각 회장과 행장에 임명된 것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두 사람이 임명된 지난해 7월 이후 무려 1년2개월 만에 KB금융그룹 최고 경영진 내분이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하지만 경영파행에 따른 조직 내 후유증과 고객신뢰 실추라는 KB금융 그룹의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KB금융과 국민은행의 이사회는 조속히 후임 회장과 행장을 선임해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동안의 사태를 반성한 토대 위에서 내부 임직원과 고객들이 두루 동의할 수 있는 유능하고 전문성이 있는 인사를 골라야 한다. 그 과정에 청와대와 여당을 비롯한 권력 중심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ㆍ금융감독원 같은 정부 행정당국, 모피아의 사적 네트워크 등은 절대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또다시 외부 개입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다면 KB금융과 국민은행은 물론이고 금융권 전체가 신뢰 상실의 구렁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한 사람이 겸임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보기 바란다. 근본적으로는 은행의 비중이 큰 금융지주의 내부 권력다툼 소지 등 문제점 해소를 위한 금융지주 제도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정부와 국회가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검토해서 대안을 강구해야 할 정책과제다. KB금융으로서는 중심이 있고 효율적인 경영 리더십 수립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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