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은 외면한 채 주택담보대출과 자영업자 대출에 열 올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6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5268억원으로 7월(6883억원)보다 24% 감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은 4조1565억원, 자영업자 대출도 1조3151억원 증가했다. 둘 다 올 들어 최고 수준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해 돈을 빌려주라며 중소기업 대출을 강조했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담보ㆍ보증 위주의 안전한 장사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기술평가나 대출 회수 등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 대출 대신 담보가 확실해 리스크가 적은 주택담보대출과 자영업자 대출에 안주하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담보대출비율(LTV)ㆍ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최경환 경제팀의 잇따른 규제완화 조치로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며 수요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창업대출 수요가 많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오랜 경기침체의 여파로 매출과 이익이 줄어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신용평가등급이 떨어지면서 은행 대출 받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은행에 기술금융 활성화를 주문하지만 현장에선 겉돌고 있다. 재무제표만 보지 말고 기업의 기술력과 성장성도 고려하라지만, 기술 평가가 전문성을 요구하는데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술도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쉬운 담보대출에 의존할 것인가. 땅 짚고 헤엄치기식 담보대출 관행과 연대보증 요구는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현주소다. 은행 스스로 정보통신기술(ICT) 등 산업과 기술 변화 추세에 맞춘 대출 심사와 리스크 관리 방법을 찾아내 후진적 대출 관행의 수렁에서 탈출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은행만 다그칠 일이 아니다. 과감한 투자가 본업인 금융사, 투자은행(IB)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5개 대형 증권사가 투자은행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존재감이 미약하다. 될성부른 벤처에 자금을 대는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하는 등 금융 생태계를 창조금융 친화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중소기업계도 변해야 한다. 정확한 재무제표 작성 등 스스로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더함으로써 기업 신인도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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