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나흘째인 17일, 충남 해미성지 및 해미읍성에서 아시아주교들과 만나고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 폐막미사를 집전한다. 해미 성지에서는 11시 해미 성지 '아시아주교 60명과의 만남', 13시 '아시아주교들과의 오찬'을 각각 진행하고 16시30분 해미읍성에서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한다.
제 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청년들도 폐막 미사에서 교황과의 세번째 만남을 끝으로 작별을 고하게 된다.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자 2000여명은 그동안 성지순례하며 밤에는 뿔뿔히 지역 신도 집에서 묵다가 이날 행사에 최종 합류하게 된다.
폐막미사장이 차려진 해미읍성은 조선 후기에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이 처형된 곳으로, ‘천주학 죄인’들의 시체를 내가던 읍성 서문,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비오)가 순교한 옥터, 순교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던 ‘호야나무’ 등이 남아 있다. 해미는 천주교 신자가 가장 큰 대규모 학살이 이뤄진 곳이다. 내포 지방에 일찌기 서학부터 시작해 천주교가 널리 전파된 까닭이다.
해미 고을은 "해뫼"라고도 일컬는다.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치소를 둔 곳이다.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돼 1400∼1500여 명의 군사들이 주둔했다.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며 내포 일원의 해안 국토수비를 담당했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인 179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약 100년간, 천주교 신자 수천여명이 처형됐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공식적인 대박해 외에도 지속적으로 내포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이 죽음을 당했다.
지금의 해미 읍성에는 두 채의 큰 감옥이 있어 한티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이 항상 가득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군졸들은 매일같이 신자들을 해미 진영 서문 밖으로 끌어내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생매장형 등으로 죽였다.
심지어는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메어치는 자리개질을 고안, 죽이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지금은 해미 진영 서문 밖 바로 앞에 있는 칠십평 좁은 순교지에 자리개질했던 돌다리가 보존돼 있다.
해미 순교탑과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십 수 명씩 데리고 나가서, 아무 데나 큰 구덩이에 파 산 사람들을 밀어 넣어 흙과 자갈로 끌어 묻어버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부의 연장 끝에 뼈들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뼈 중에는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된 것도 있었다. 산 사람을 묻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해미 성지는 1985년 4월에 해미 본당이 들어서면서 창설됐다.
폐막 미사의 중심 공간인 제단(祭壇)은 읍성 서문 옆에 조성된다. 바로 박해 시대의 신자들은 죽어서 나간다는 읍성 서문을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여겼던 자리다. 그 문 옆에 교황이 자리하고, 청년들은 교황과 마주봄과 동시에 천국 문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된다. 교황이 미사를 드릴 제대(祭臺)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한 23개국 청년들이 장식한 십자가를 조립해서 만든다. 아시아 가톨릭 청년들의 하나 됨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날 미사는 다양한 언어의 향연으로 이뤄진다. 성경 독서는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신자들의 기도(보편지향기도)는 일본어, 영어, 힌디어, 한국어 등으로 낭독된다. 그 밖의 기도문은 교황은 라틴어로, 신자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바친다. 그래도 교황과 청년들의 기도 내용은 똑같다. 미사 때 읽는 기도문과 성경의 내용은 전 세계 가톨릭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청년대회의 폐회사가 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은 평소에 하던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이뤄진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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