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선물 남기고 떠난 손학규
정계 발 들인 건 1993년…4선 국회의원·도지사·장관 지냈지만 대권의 꿈은 요원
정계 복귀는 미지수…'시민'에서 '정치인' 옷 갈아입을 여지 있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2014년 7월31일 국회 정론관.
회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를 맨 말끔한 차림의 '여의도 신사'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67)이 모습을 드러냈다.
담담하고 차분한 표정의 손 고문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목소리 톤도 일정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애를 쓰는 듯 했다. 배려심이 묻어났다. 이날은 21년 동안 정치인의 삶을 살아온 손 고문이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저는 오늘 정치를 떠납니다."
그의 입에서 떨어진 첫 마디에 이내 기자회견장은 엄숙해졌다. 순간 찡한 전율이 감돌았다. 그의 정계 은퇴 현장에 함께 한 몇몇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손 고문은 당당한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입니다. 저는 이번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손 고문은 7·30 재보궐선거 수원병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 김용남 후보에게 패했다. 그는 두 말 없이 정계 은퇴를 결심했다.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93년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눈에 든 손 고문은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광명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첫 금배지를 달았다. 3년 뒤 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승승장구했다.
1998년에는 첫 실패를 맛봤다.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그는 16대 총선에서 다시 금배지를 달고 3선 의원이 됐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재도전한 그는 끝내 '지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시베리아로 나선 이래 민주당과 함께 한 저의 정치적 여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보람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손 고문의 정치 역경은 한나라당을 나오면서 시작됐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 그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정동영 후보에게 밀렸다. 2008년 초 당 대표를 하면서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2010년 다시 당 대표를 맡은 그는 이듬해 4·27 재보선에서 경기 분당을 지역구에 당선돼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그에게 대권의 꿈은 요원했다.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의원에게 패한 그는 대선 출마의 꿈을 또 다시 접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선당후사'의 자세로 이번 재보선에서 여당 텃밭인 경기 수원병에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선물을 남겼다.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던 '저녁이 있는 삶'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면 70대에 접어든 '시민' 손학규가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을 여지는 남아 있다. 더욱이 2017년 대선까지는 3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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