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서당 교육을 받으신 외조부는 상목수(上木手)셨다. 직업적인 목수라기 보다는 오직 독학과 경험으로 나무의 결을 읽고 허공이 둥지트는 법을 익혀, 먼 동네까지 마루대 올리고 서까래 턱맞출 때는 그를 불렀다. 이 상목수는 끓는 듯 고요한 여름날 청마루에 앉아 시를 쓰셨는데, 다리 꼰 푸른 무처럼 잠든 외손주의 몽중(夢中)을 탐색하는 신명이셨다. 몸부림이라도 치노라면 죽부인을 안겨주시며 이처럼만 시원한 여자 만나면 괜찮을 끼다 라고 껄껄거리셨다.
그 외조부, 막걸리 여러 잔 걸치시면 하시는 말씀이 "지는 게 이기는 기라"였다. 이기면 사실은 지는 기라. 다 이겨놓고 지는 척 하는 것이 지혜로운 기라. 이기버리면 기분 좋은 사람 없으니 이겨도 이긴 티 내지 말고 이길 수 있어도 그쯤에서 지는 것이 센 사람인 기라"였다. 어린 나이로선 도저히 이해못할 이 승부론이 가슴에 남았다. 내가 어머니에게 이 얘길 했더니, 우리 어머니 말씀이, "아이고, 버전이 바뀌셨네. 예전에 내겐, 손해보는 게 이익보는 기라,고 말씀하시더니" 하신다.
내가 손해 보고 저쪽이 이익보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바보 되고 저쪽이 멋있어지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다. 손해 보겠다고 작심하면 손해가 손해 아닌기라. 아무리 내던져도 결국은 은근히 덕보고 득보는 기 인생인기라. 돈도 손해 보고 인격도 손해 보고 기분도 손해 보고 그냥 손해보노라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기대할 바도 없어지는 기라. 넘 탓 하지도 않아지고 가만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기라. 돌아가신 할배 '하회탈 웃음'이 떠오르는 날이다. 마음집 하나 참 널찍하고 시원하게 지으신 양반이셨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