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친구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제발. 사고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는 방송이 처음부터 나왔고 대처와 구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친구들이 희생되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은 단순히 수행여행 가던 길에 사고가 나서 죽은 게 아닌데 이런 걸 교통사고로 표현하는 일부 사람들의 말이 상처가 된다.” (생존한 단원고 학생의 법정증언)
2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401호 법정에서는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전날에 이어 진행됐다. 증인석에 앉은 학생들은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고 말을 잇지 못하는 등 힘겨운 모습을 보였으나 사고 발생 후 대처와 관련한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구호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과 선원 등 15명에 대한 재판을 심리 중인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는 생존 학생들이 겪고 있는 사고 후유증 등을 고려해 광주가 아닌 안산지원에서 ‘공판기일 외 증인신문’을 이틀에 걸쳐 진행했다.
학생들은 배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선장이나 선원, 해경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또 “‘가만히 있어 달라’는 안내방송이 아니었다면 친구들이 처음부터 배 밖으로 나와 많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증언에 나선 A양은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니까 나갈 수도 있었지만 일단 대기했다. 사실 안전봉을 잡고 올라갈 수도 있었고 선미 쪽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면서 “객실 내에 구명조끼를 우리끼리 꺼내와서 일단 입고 대기했다”고 진술했다.
A양은 이어 “구조를 믿고 기다렸지만 선내에 물이 계속 차올라서 탈출했다”며 “그 과정에서 선장이나 선원, 구조인력으로 동원된 이들이 도움을 주거나 안내해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증언을 마치며 “빨리 진상규명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오후까지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또 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B군은 “눈으로 보기에도 배가 가라앉고 있었는데 그때 선내에선 어떤 안내도 없었다”며 “방송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기에 믿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B군은 그러면서 “대피하라는 방송은 없었지만 물이 차올라 밖으로 빠져나왔다”며 “밖에서도 선장이나 선원, 해경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했다. C양은 “제발 왜 그렇게 됐는지만 제대로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선내방송을 통해 배가 침몰하는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고 탈출을 도왔다면 학생들이 많이 빠져나왔을 것”이라며 “내가 배 밖으로 나온 시간이 10시 정도였는데 처음에 오빠한테 전화한 시간은 8시50분 정도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앉아서 대기만 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D군은 “못 나온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검찰의 말에 “방송만……. 정말 방송만 제대로 했더라면…….”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재판장이 “그랬다면 친구들이 더 많이 살았을 것 같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한편 증언 과정에서 세월호 승무원이었던 故 박지영씨가 언급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박씨는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느라 자신은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희생됐다. 증인신문 중 한 여학생은 “박지영 언니가 출입금지라고 적혀있는 선원 전용 통로에서 나와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입었냐고 물어보고는 굴러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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