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 떼고 가게 문 다시 열었지만…지금 안산은 '슬픈 日常'을 산다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얘들아, 수업 종 쳤다. 뛰어와야지!"
오전 8시께가 되자 등교길을 재촉하는 학교 수위 아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덩달아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차량들, 지각을 면하기 위한 학생들의 잰걸음으로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분주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희생자들의 무사귀환과 명복을 비는 '노란 리본'을 찾아볼 수 없는 등교길의 모습은 얼핏 여느 고등학교의 아침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숨진 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로부터 동네 어귀까지 가득 채워져 있던 각종 추모 리본, 손 편지, 선물들은 이제 치워졌다. 희생자 전모(17)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의 굳게 닫혔던 문도 어느새 열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이틀 앞둔 22일. 기자가 두 달 만에 찾은 경기 안산시 고잔1동의 모습은 그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시 전체가 비탄에 빠졌던 안산은 겉으로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지역에서만 50년간을 살았다는 김영철(가명) 할아버지는 "노란 리본이나 현수막이 사라지면서 동네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안산은 여전히 4월16일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하는 한, 그리고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는 한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을 잃은 안산시민들의 시계는 결코 4월16일에서 떠날 수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안산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선선한 날씨에도 거리에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만난 주민들은 기자와 대화하기를 꺼렸다. 두 달 전보다 오히려 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곳이 '세월호 비극의 도시'라는 것을 아직도 분명히 보여주는 곳은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였다. 분향객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지금도 하루에 수백명이 찾아온다. 이곳에서 석 달째 번갈아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대한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조문객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ㆍ저녁으로 이곳을 수차례 찾는 분들도 여전하다"라며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진짜 절망과 고통은 이제야 비로소 찾아오고 있는지 모른다. 안소라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들어서야 유가족들과의 대화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돕고 싶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분들이 이제는 '너무 힘드니 와 달라'는 요청을 해 온다"는 것이다.
결국 사고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서는 안산은 안산은 침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잔1동 주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이야기를 나눠보면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의사자 지정이나 보상 규모가 아닌 '진상규명'이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의 부진이 낳는 것은 '불신'이었다. 주민들은 무능한 정부, 무능한 정치권, 오보를 남발하는 언론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주민 장길수(59)씨는 "유병언이 죽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믿기 어렵다"며 "검찰이 아무리 애를 써도 두 달 동안 못 잡다가 갑자기 변사체로 나타났다는데 어떻게 믿겠나"라며 반문했다. 그는 또 "제일 나쁜 건 국회의원들이다"라며 "특별법을 두고도 서로에게 불리할까봐 이러쿵저러쿵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게 문을 연 전군의 어머니도 비슷했다. 그는 "기자 분들에게 상처 입은 게 너무 많아서…죄송합니다"라며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석 달 가까이 돌아가며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한국노총 소속 유상하 조흥노조위원장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특별법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세월호 안산시민대책위 홍보팀장도 "세월호 참사는 안산을 넘어 국가적 사안인 만큼 진상규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에서는 유가족들이 온전한 시민으로서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 복원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일상을 찾아가는 듯한 안산, 그러나 아직까지 안산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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