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객들이 몰리고 있는 영화 <혹성탈출>은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찬사를 받고 있지만 사실 이건 상상만이 아니다. 이미 그런 과거가 있었다. 먼 옛날, 이 세상은 인간이 아닌 다른 포유류가 다스렸다. 그리고 그때 그 어진 품성으로 다른 동물들의 지지를 얻어 지배자의 위치에 오른 종족은 바로 소였다.
그 '소의 나라'의 흔적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예컨대 한국의 서울이 그 중심지였는데 소들이 울타리를 치고 살던 마을 '소울'이 지금의 '서울'로 바뀐 것이다. 혹은 많은 소울들 중 서쪽의 가장 큰 소울을 '서울'로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소처럼 열심히 일해야 했던 흑인들이 즐겨 부르던 음악엔 '소울 뮤직'이란 이름이 붙었다.
소들이 다스릴 때 세상은 평화로웠다. 소들은 땅을 열심히 갈아 대지를 비옥하게 했다. 덕분에 온갖 생물이 번성했는데 특히 인간의 수가 많아지고 지능이 향상되면서 그 세력을 키웠다. 그래서 한때는 소와 인간이 공동으로 세상을 다스렸는데 몸은 사람이요, 머리는 소인 신농씨가 그때의 통치자였다. 마침내 요순 임금, 단군처럼 훌륭한 이들이 나와 인간이 영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 지배자 교체는 소들의 양보로 평화롭게 이뤄졌다. 그때 인간은 인간 자신은 물론 금수 초목까지 동포로서 아껴줄 것을 맹서했으니, 그것은 인간과 다른 생명들 간의 신성한 언약이었다. 오랫동안 인간은 금수를 먹으면서 고마움을 알았고, 금수는 인간을 위해 일하면서 원망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인간의 통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다른 생명들, 아니 인간 동족 자신부터 해치고 상하게 하는 것이 극한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만 듯하다. 소들이 다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회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은밀한 얘기를 한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순후한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을 받고 있는 그는 취중에 실은 자신이 '소씨'인 것은 진짜로 인간이 아닌 소의 후예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악행에 실망한 소의 자손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소의 지혜를 전하려 했던 황희 정승도 자신의 조상이라고 얘기해줬는데, 집안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지능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후회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그래서 다시 지력보다는 어진 품성을 갖춘 종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고백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소의 나라의 복된 백성이 되고 싶다"고.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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