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유일하게 기댄 것인 '난중일기'...중압감 속 연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597년, 충무공 이순신을 둘러싼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삼도 수군통제사로 다시 부임하게 된 이순신에게 남아있는 건 12척의 배뿐이다. 이미 지병으로 온 몸이 쇠약해진 상태다. 조선 앞바다에 침투한 왜군은 시시때때로 이순신을 옥죄어오고 있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수군을 해체하라고 명령한다. 부하들과 백성들에게는 독버섯처럼 두려움이 번진 상태다.
영화 '명량'은 이 같은 고립무원에 처한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다룬다. 해협이 좁은 명량의 조류를 이용해 일자진으로 물결을 버텨가며 기다린 이순신의 전술을 대형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다. 총 60분이 넘는 해상 전투 장면에 대해 김한민 감독은 "전반부에서 다뤄진 이순신 장군의 드라마가 결국 해전에서 완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싶었다. 해전 장면이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없으면 실패할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의 백미는 이 해상 전투 장면이다. 지형과 환경, 심리전을 이용해 이순신이 승산없는 싸움을 끝내 이기게 만드는 과정이 속도감있게 펼쳐진다. 영상은 화려하고, 음악은 웅장하다. 노련한 전략가로서의 이순신의 면모가 돋보인다. 다만 이순신에 비해 적장의 캐릭터는 다소 평면적으로 비춰진다. 왜군의 용병장수 '구루지마'는 냉혹하면서도 잔인한 성품에 탁월한 지략을 갖춘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순신과의 싸움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기 보다는 무기력한 인상을 남긴다.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은 벼랑 끝에 선 한 영웅의 모습을 묵직하게 그려낸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 속에서도 눈빛만은 이글거린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며 살고자 하는 부하들의 마음을 다잡게 하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자가 이긴다"며 강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시사회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최민식은 "충무공을 연기하는 것은 '잘해야 본전'이고, 그 중압감 역시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상업성은 제쳐두고라도 우리도 자부심을 느낄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분의 눈빛은 어땠을까, 어떤 음성이었을까, 어떻게 고뇌하고, 슬피 울었을까. 이것은 내 나름대로 함부로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흉내 낼 뿐이다. 내 연기를 내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찜찜한 채로 남아있다. 아무리 충무공 관련 서적을 읽어봐도 그것 역시 모두 작가의 해석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기댄 것이 난중일기였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마 이번 작품은 연기생활에 있어 두고두고 기억날 것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다." (최민식)
몇 가지 역사적 사실과는 어긋나는 장면도 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거북선이 불타 없어지는 장면이나, 이순신의 아들이 등장하는 장면 등이다. 여기에 대해 김한민 감독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명량' 영화를 만들 때 주위 사람들의 첫 질문이 '거북선은 나오나?'하는 거였다. '원균이 이끌고 나가서 거북선이 소실됐다'는 기록만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거북선이 불타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본 이순신 장군의 절망감과 낙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제작비만 150억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답게 영화의 스케일은 남다르다. 1000여벌의 갑옷, 150명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초대형 세트와 짐벌, 각종 화포 등 남다른 볼거리를 자랑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이 쌓인 원한들을 어찌할꼬"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결국에는 영화 '명량'이 하고 싶었던 말이다. 30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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