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식사 자리 친분 시작으로 부적절 유착관계 진화…사건 터지면 말로만 철저 수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이혜영 기자]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너무 크고, 과거의 일이라고 변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6월11일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스폰서 검사'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건설업자 정모씨는 20여년간 부산·경남 지역 검사들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폭로해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씨는 누구에게 얼마의 향응을 제공했는지 꼼꼼히 기록했다.
검사장 이상을 포함한 현직 검사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심지어 특별검사 제도까지 도입해 '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했다. 검찰 수뇌부는 당시 검찰의 낡은 방식과 문화를 확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다시 '스폰서 악몽'에 빠져들었다. 수도권 검찰청에 근무하는 현직 부부장 검사 정모씨가 숨진 강서구 재력가 송모씨에게 10차례에 걸쳐 178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총장이 이례적으로 감찰본부에 수사를 맡긴 것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의혹이 남지 않도록 투명하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스폰서 검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고는 했다. 문제는 잊을 만하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논란이 불거져 낙마할 정도로 검찰 최고위층부터 평검사까지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스폰서는 친인척부터 친구, 학교 동문, 고향 선후배 등 검사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이들은 물론 대기업 관계자, 일반 사업가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검찰의 회식 문화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성 검사가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반강압적인 음주문화는 남아 있다. 후배 앞에서 보스 기질을 보이려다보면 잦은 회식에 술값, 밥값이 만만치 않고 이를 해결하고자 스폰서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노골적으로 돈을 챙기려고 스폰서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벼운 관계로 시작한다. 식사비나 술값을 내주고 함께 골프도 치면서 친분을 쌓고 가족 경조사를 챙기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검사는 부담 없는 관계라 생각할지 몰라도 돈을 제공하는 당사자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설사 친인척이나 친한 친구 등 부담이 덜한 관계라도 '보험' 성격을 띤 스폰서의 기본속성은 그대로 살아 있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장기간 스폰서 역할을 해 줄 경우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한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데 그게 기소, 불기소와 연결이 된다면 한 사람의 인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폰서 문제가 드러나도 처벌은 말처럼 쉽지 않다. 2010년 스폰서 파동 때도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검사들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거나 대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서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가 비리에 연루되면 동료 검사가 수사를 하는 데 엄정한 칼날을 들이댈 수 있겠느냐. 분명히 한계가 있다"면서 "스폰서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고 해도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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