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지난해 중국 쑤저우로 출장길을 떠났을 때다. 잠시 시간을 내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졸정원(拙政園)에 들렀다. 명나라 어사였던 왕헌신(王獻臣)이 낙향한 뒤 만든 졸정원은 3년 동안 화가에게 정원을 그리게 하고 13년 동안의 공사를 통해 만들어졌다.
화창한 가을 졸정원의 곳곳을 돌아보고 있는 도중 신선이 머물렀다는 뜻의 정자 별유동천(別有洞天)으로 향했다. 연못을 가로질러 저 멀리에 있는 북사탑(北寺塔)이 한눈에 들어온다.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북사탑은 마치 정원의 안에 들어와 있는 듯 조금만 걸어가면 닿을듯 싶다.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자 함께 갔던 가이드가 옆에 다가와 차경(借景)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있는 북사탑까지가 졸정원이냐는 질문에 가이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차경을 이해하면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쑤저우는 땅 대부분이 평지이기 때문에 높은 곳이 없어 북사탑 같은 높은 탑이 귀했습니다. 왕헌신은 높은 탑을 세우자니 돈이 많이 들어 아예 탑이 자신의 정원에 있는 것처럼 지은거죠. 중국인들을 두고 내것도 내것, 남의 것도 내것인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겁니다."
불과 10전인 2000년대 초반에 들렀던 중국과 지난해 중국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곳곳에 세워진 고층 빌딩과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들은 외국 자본들로 세워졌지만 중국인들 입장서는 모두 중국의 것이다.
중국은 글로벌 자본을 빨아들여 급성장하고 있다. 13억명에 달하는 방대한 내수 시장이 무기다. 모든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내수 기반이 약한 나라의 경우 전략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필요가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 현지 기업들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은 빠르게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중국 기업들이 삼성, 애플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TV는 중저가 시장에서 한국, 일본 등 선도 업체들을 이미 앞서고 있다.
자동차 역시 지리, 비야디, 치루이 등 3대 토종 메이저 업체들이 맹활약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주춤하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차가 점유하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3%에서 올해 39%까지 하락했다. 줄어든 점유율은 모두 독일차 브랜드들이 가져갔다.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벤츠, BMW, 아우디 등의 독일차로 눈을 돌린 덕분이다.
현재 중국 가전업체 대다수는 해외 진출 보다는 내수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 힘쓰고 있다. 굳이 해외 진출을 하지 않아도 웬만한 글로벌 기업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이 단점이다. 최근 전자업계에선 중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삼자는 얘기들이 흔하게 나온다.
하지만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이제는 '한국산'이라는 것만으로 13억 중국 시장을 뚫기는 어려워졌다. 중국이 '차경(借景)'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역시 차경을 통해 중국 내수 시장을 넘볼때다.
방법은 하나다. 중국내 자국 브랜드의 기술력이 아무리 높아진다 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브랜드가 프리미엄을 상징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품질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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