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유임키로 한 것은 총리 인선을 두고 국론이 분열되며 국정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의전총리'라는 비판을 받아온 정 총리를 유임시킨 것은 책임총리제 실현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며 인사 개편을 통한 국정쇄신 계획도 용두사미 격으로 끝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이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고 물러난 뒤 새 후보자 물색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6일 전격적으로 정 총리의 유임을 결정했다. 유임 배경을 두고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는 새 후보자의 요건으로 '청문회 통과'와 '개혁성' 두 가지를 놓고 인물을 찾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상황을 종합하면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많은 총리 후보자들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박 대통령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할 만한 보수 인사들은 청문회 통과가 쉽지 않아 정식 임명까지 논란이 불가피하며 이에 따른 국정공백 장기화라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박 대통령이 문창극 전 후보자 사퇴 후 "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힌 것처럼, 세 번째 총리 후보자를 내놓는다 해도 정식 청문회가 아닌 여론재판 형식의 검증을 피할 수 없으며 자칫 3연속 총리 후보자 낙마라는 초유의 사태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개혁성이 강하며 야권에서도 인정할 만한 '통합 총리'는 박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국가개조의 컨트롤타워로서 부적합하다며 기피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에게 내치 권한을 크게 분산시키는 방향보다는 대통령 스스로 국가개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할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 총리 유임은 박 대통령이 지난 1년4개월간 견지해온 국정운영 방식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결정으로 판단된다. 각료 8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곧 있을 예정이라, 정 총리 유임에 따른 야권의 불만이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일부 후보자들에 대한 부정적 검증 내용과 더해져 순조롭지 못한 청문회를 예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총리 유임을 통해 국정 안정을 꾀하려는 것과는 별개로 국론분열은 오히려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안대희·문창극 연쇄낙마 후 문제점이 지적된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해 전면 손질을 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때 운영되다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된 인사수석실이 부활한다.
인사수석실 산하에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두고 공직자 임명을 위한 발굴과 검증, 평가를 상설화한다는 계획이다. 인사수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실무 간사를 맡는다. 인사위원회 위원장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파동의 책임자로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김 실장에 대한 거취 문제는 이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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