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진영논리 벗어난 법리적 논쟁 필요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9명의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6만명의 조직 자체가 ‘법외노조’ 처지가 됐다. 합법노조 지위를 잃어버리면서 단체협약권이 무너졌고, 전임자들 역시 학교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19일 이러한 판결을 내린 명분은 해고자를 노동조합원으로 그냥 둔 것은 법 위반이라는 해석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을 둘러싼 공방은 정치논리로 번져가고 있다. 극단적인 대립과 충돌 속에 ‘험한 얘기’가 오가고 있지만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모습이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둔 노동조합의 규약은 정말로 잘못되고, 법을 위반한 것일까.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비판적인 이들은 해외사례를 든다. 외국은 해고자도 노조원으로 인정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왜 그렇지 않느냐며 비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다. 한국의 대법원도 그런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민일영)은 2013년 9월27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 서울지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장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규약시정명령취소’ 사건에서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은 ‘기업별 노동조합’에만 한정적으로 적용한다”면서 “원래부터 일정한 사용자에의 종속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 등의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전교조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다. 교원노조는 광역 시도 단위 또는 전국 단위로만 노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태생부터 기업별 노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해고자를 노조원으로 두기로 한 노조의 규약은 ‘위법’한 행위일까.
대법원은 “(발전노조는) 일종의 초기업적 노동조합에 해당하므로 ‘조합활동과 관련해 해고된 자’도 원고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 단서가 노조법 제2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위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왜 전교조는 법외노조 판단을 받을 것일까. 고용노동부나 서울행정법원은 교원노조법 제2조를 근거로 들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는 교원이 전교조 가입 대상이라는 얘기다.
일반 노조의 경우 조합활동 과정에서 해고된 자를 그대로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게 허용되는데 교원노조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해야 하기에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이미 해고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는 판례를 내놓은 바 있다. 전교조 사례 역시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이다. 전교조는 이미 항소의 뜻을 밝혔다. 이제 항소심(2심) 나아가 대법원 상고심을 통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33조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단결권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중 하나다.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3월 제320차 이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처리 움직임과 관련해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는 법 조항은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왜 한국의 상황을 우려하는지, 교원노조법을 포함해 관련 법률에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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