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쌀 관세화 유예 2017년까지 연장
의무수입량 2배 이상 확대·쌀 이외 상품 관세인하도
韓, 의무수입량 2배 늘리면 소비량 20% 육박
쌀 이외 상품 관세 인하 부담도 커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필리핀이 쌀 의무수입량을 늘리고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우리나라도 쌀시장 개방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졌다. 필리핀처럼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대신 관세화를 미뤄야할 지, 시장을 개방하고 관세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상의 초점을 맞춰야 할 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회의를 열어 필리핀의 관세화 의무를 2017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대신 필리핀은 쌀 의무수입량을 현재 35만t에서 2017년까지 80만5000t으로 2.3배 늘리고, 수입 관세율은 40%에서 35%로 낮추기로 했다.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미국과 호주, 캐나다, 태국은 쌀 대신 다른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요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쌀 이외에 관세 인하에 합의한 상품이 무엇인지는 양자 합의와 관련된 내용이라 비공개"라며 "다만 쌀 수입량을 2배 이상 늘린 만큼 다른 상품에 대해서도 상당한 양보를 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 모두 농축산업 선진국임을 감안할 때 축산품 관세 인하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올해 쌀 40만9000t을 의무 수입해야 하는데 이는 작년 기준 전체 쌀 소비량의 9%에 달한다. 필리핀처럼 수입량을 2배 이상 늘린다면 20%에 육박하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 국내 쌀 자급률이 90%에 달하는 만큼 수입쌀이 늘어나면 쌀 가격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쌀 이외 다른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 요구에 합의해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쌀시장 개방을 막는 대신 쇠고기나 돼지고기 관세를 낮춰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필리핀이 최대한 협상을 연장해온 것은 우리 정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은 2012년 6월 관세화 유예 기간이 종료됐지만 2년 가까이 협의를 진행, 끈질긴 협상력을 보이면서 국내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었다. 우리 정부는 이달내로 정부 입장을 결정, 오는 9월말 WTO에 통보할 예정이다.
세종=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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