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 3500만원 들여 8만km 비행, 세계 100대 코스 완전정복기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100일 동안 세계 100대 코스를 라운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한 동네에서 100라운드를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골프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전 세계 100대 코스를 100일 안에 순회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공했다. 골프전문지 '더골프' 최근호에 소개된 밥 맥코이(75ㆍ잉글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1997년의 일이다. 비행기를 8만km나 탔고, 3500만원의 경비를 썼다. 그 여행 과정을 따라가 봤다.
맥코이는 20대까지 골프채를 잡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골프에 입문하는 순간 곧바로 매료됐고, 무엇보다 각양각색의 코스를 경험하는 게 신났다"고 했다. 얼마 후 우연히 '미국 100대 골프장' 리스트를 보게 됐고, "모두 섭렵하겠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직업상 1년에 몇 차례는 미국을 방문할 수 있었고, 갈 때마다 현지 지인들에게 부탁해 고객과 라운드 미팅을 했다.
무려 18년이 지난 1984년에는 100대 코스를 모두 돌았다. 맥코이는 그러자 이번에는 '세계 100대 코스 라운드'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아시아와 호주, 유럽, 남아프리카 등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100대 코스를 4년 뒤인 1988년 11월에 기어코 완등했다. 맥코이는 목표를 상향 조정했고, 세계 100대 코스를 다시, 그것도 100일 안에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100일 휴직이 어렵자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MPR(맥코이 파워리포트)'라는 회사를 차렸다. 전력발전소와 시설에 관한 세계시장의 분석 보고서를 발행해 GE와 지멘스, ABB, 미쓰비시 등 글로벌 기업에 제공하는 일이었다. '100일간의 100라운드' 강행에 앞서 고객사에게는 "보고서 제출 일을 미루겠다"는 양해도 구했다. 다행히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거래를 끊은 곳도 없었다. 오히려 돌아와서 3곳과 추가 계약이 성사됐다.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2000파운드(3500만원) 정도다. 맨 먼저 큰 자석보드부터 구입했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100일 동안 플레이해야 할 코스 위에 100개의 자석을 붙여 동선을 최대한 짧게 잡는 루트를 만들었다. 항공편은 전 세계를 순회할 수 있는 스타얼라이언스의 RTW(Round the World) 티켓을 끊었다. 비즈니스석이 1만달러, 1등석이 1만5000달러다.
4계절용 옷과 골프가방, 랩탑 컴퓨터 등 짐은 최소화시켰다. 그래도 28kg, 당연히 체력 관리도 중요했다. 당시 맥코이의 나이는 58세,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여행 시점 1년 전부터 체력 훈련을 강화한 이유다. 몇 개월 전부터는 라운드할 때 백을 직접 메면서 지구력을 키웠다.
1997년 4월27일, 드디어 대장정이 시작됐다. 예전에 100대 코스를 돌면서 만난 세계 각지의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됐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고, 동반플레이를 자청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코스는 하루에 2라운드를 소화해 16차례는 더블헤더 경기를 치렀다. 한 번씩은 플레이했던 코스라 이동 경로를 최소화한 점이 거사를 성공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00대 코스 가운데 45곳은 회원 동반이나 추천이 필요해 골프 외적인 노력도 쏟아 부었다.
첫 라운드는 미국 텍사스주 콜로니얼, 마지막은 지난해 US오픈이 열렸던 메리언이었다. 총 15개국, 8만6062km를 여행했다. 핸디캡 12의 맥코이가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역시 '마스터스 개최지' 오거스타내셔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운드는 스코틀랜드 턴베리다. 저녁 7시에 출발해 홀로 18홀을 마쳤고, 호텔 정원에 울려 퍼지는 백파이프 연주소리를 들으며 귀환했다. 골퍼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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