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딥' 빠진 부동산, 규제 풀어야 산다<2>분양가 상한제
-심의 지연에 사업 일정만 늦어져
-탄력 운영 개정안, 야당 반대로 막혀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사업추진 시간이 더 걸리죠. 분양가를 산정해 제출하면 분양가심의위원회를 열어 적정성을 심의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는 심의를 민원 해결 창구로 활용합니다. 도로개설 숙원사업을 대신 해결해달라거나 하는 거죠. 안 들어주면 어떻게 되냐고요? 심의 일정을 몇 달씩 늦춰버리기도 해요. 분양사업은 시기가 중요한데 이렇게 되면 난감한 입장이 되죠. 분양가 폭등을 막는 장치가 분양가상한제라고 순진하게 믿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한 중견건설사 임원의 하소연이다. 그는 "심사를 거쳐 나온 분양가가 결국 주변시세와 맞추는 수준인데 이럴 바에야 상한제를 굳이 운용할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했다. 더욱이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분양가가 인근의 이전 분양가보다 낮아지고 지방에서는 분양가가 폭등하고 있다며 상한제가 분양가를 안정시키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논리는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소리 높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부동산시장 규제 완화 의지에는 분양가상한제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도 지속적으로 상한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다만 변수는 야당이다. 당정이 4월 임시국회에서 상한제 탄력운영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으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주택법 개정안은 임시국회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이어 전체회의에서도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하며 논의 대상에서 빠져버린 것이다. 이 법안은 2012년 9월19일 정부 발의로 국회 제출된 이후 수차례 통과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야당 반대에 부딪혔다.
상한제에 관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부와 업계의 논리는 간단하다.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고 주택시장에서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인하하고 있는 만큼, 상한제를 모든 사업에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주택시장을 감안할 때 '사실상 의미 없는 규제'라는 판단인 셈이다. 반면 야당은 상한제를 폐지하면 분양가와 주변 집값이 꼬리를 물며 상승할 것이라고 맞선다.
분양가 상한제는 집값 급등기인 2005년 추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막겠다며 공공택지에 도입됐다. 이후 2007년 민간택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장기간 침체되면서 취지를 상실했다는 지적에 부닥쳐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상한제가 처음 도입된 2005년 서울 지역의 3.3㎡ 당 평균 분양가는 1441만원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1805만원, 2008년 2269만원으로 치솟았다. 상한제 뿐만 아니라 경기 변동과 주택 공급량, 땅값, 지역차 등 변수가 작용한 결과다.
현재 상한제는 20가구 이상 일반인에게 공급되는 모든 공동주택에 적용된다. 예외는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 ▲경제자유구역에서 건설·공급하는 공동주택 중 외자 유치 촉진과 관련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관광특구에서 건설·공급하는 50층 이상, 높이 150m 이상인 공동주택은 가격 통제 대상이 아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공동주택에 상한제가 적용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원칙적으로 상한제를 폐지하되 투기가 과열되는 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제출한 주택법 개정안은 ▲보금자리주택과 보금자리주택지구에서 건설·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 외 주택 ▲주택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지역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지역의 주택을 상한제 대상으로 규정했다.
정부는 6월 임시국회에서 주택법 개정안 통과를 재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 통과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도 분양가 상한제는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있다"면서 "행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인 총부채상환비율(DTI) 등과는 달라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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