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불구 '무보직' 6개월
30년 공직자의 씁쓸한 퇴장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제가 금융위 내에서 (신제윤)위원장을 제외하고 제일 고참입니다. 국장시절 나와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지금 1급까지 올라와 있을 정돕니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지난달 30일 집무실에서 개인 물품을 정리하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사진)은 공직을 떠나기로 결심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나 금융위원회에 복직했지만 반년 가량 보직을 받지 못하자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5층에 마련된 그의 집무실 방문 앞에는 아직도 직위 대신 '김광수'라고만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다. 김 전 원장은 "(복직 후)보직은 없었지만, 그동안 선후배들과 생활하면서 실추된 명예도 어느정도 되찾은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변양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변양호 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와 함께 '억울한 옥살이'를 한 대표적 공직자 중 한 명이다. 김 전 원장은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1년 6월 느닷없이 구속됐다.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이던 2008년 9월 부실해진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부산저축은행 간부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불법을 저지른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진술만 있었지만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금융위에서 파면됐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기 시작했고 2심 재판부는 "진술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김 전 원장은 같은 해 11월 18일 안전행정부에서 복직 결정을 받았고 그 후 일주일 뒤인 11월 25일 금융위에 돌아왔다. 구속부터 복직까지 정확히 29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1심에서의 유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금융위가 그를 공석 상태였던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1급)으로 밀었지만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가 1심에서 유죄를 받았던 점을 문제 삼아 그의 증선위원 선임을 차일피일 미뤘다. '무보직' 상태로 6개월을 지낸 김 전 원장은 고심 끝에 지난달 19일 금융위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그의 은퇴 소식은 누구보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안타까워 했다. 금융위 모 국장은 "(김 전 원장)업무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 두루 존경을 받았던 선배"라며 "단지 인재 한 명을 잃는게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금융권의 모 인사도 "무죄를 받은 그에게 국가가 배상은 커녕 자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며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또 한 명의 희생양을 낳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전 원장은 아직 향후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다. 그는 "6월 초부터 휴가를 냈다. 여행 다니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생각해 보려 한다. 함께 해 준 동료 선후배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의 사표는 이번주 수리될 예정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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