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눈물을 보인 19일 저녁, 진도로 내려가기 위해 이동 중이던 피해가족대표단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소속 정보형사들이 사복 차림으로 몰래 따라갔다가 들통이 났다. 격분한 유가족 일부가 다시 안산으로 올라가자, 경기경찰청장은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갔던 것이지 나쁜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찰이나 미행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때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을 때 세간에 회자됐던 명언, '술은 먹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자웅을 겨루는 표현력이 아닐 수 없다.
사복 경찰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희생자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등에도 다수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다. 그때마다 이들은 가족들의 불편이나 요구사항을 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도실내체육관이든 팽목항이든 도처에 '정복'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고, 수시로 조를 이뤄 주변을 순찰한다. 도움을 청할 경찰이 보이지 않아 유가족이 그들을 찾아다닐 일은 결코 없어 보였다.
언젠가부터 이 나라 국민은 '숨기는 것'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국가가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것, 답해야 할 것에 답하지 않는 것, 밝혀야 할 것에 거짓을 덧씌우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낱낱이' 밝혀지는 게 없는 세상에서 불쾌하고 불안한 개인은 추측에 의존하게 된다. 괴담과 유언비어는 할 일 없어 심심한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서 배태된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국가가 개인을 '몰래' 따라다니고 그 이유를 변명하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사회안정'과 '화합'이 도모될 수 있을까. 이 정부가 중시하는 안전은 유가족의 안전이 아닌 뭔가 '다른 것'에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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