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의 안전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국내 고층 건물 가운데 재난대응 시스템이 최고 수준이고 국제회의가 자주 열려 각국 정상들도 찾는 서울 코엑스에서 비상 대피훈련이 실시됐다. 사전 예고한 상태에서 화재 발생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지만 정해진 시간에 대피를 마친 입주사 직원은 5명 중 1명에 그쳤다. 일부는 미리 건물 바깥으로 나가 훈련 자체를 기피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곳곳에서 '안전'을 외치지만 우리네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중증이다.
이런 판에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각종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차 추돌사고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수도권 전철과 공항철도에서 후진 사고가 발생했다. 충남 아산에선 준공 예정일을 보름여 남긴 신축 오피스텔 건물이 옆으로 기울었다. 서울 강남에선 철거 공사 중인 건물이 무너지며 가스가 누출돼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울산 LS니꼬 공장에선 폭발 사고로 8명이 다쳤다. 잇따른 철도 사고와 건설ㆍ산업현장 사고들은 신호기 고장, 스크린도어 오작동, 지하 가스배관 차단 소홀 등이 원인으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입으로만 안전을 외치는 것으로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제도와 규정을 바꿔도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적당히 대충대충 넘어가면 비슷한 사고는 또 터진다. 비상 상황에서 안전하게 대피하려면 평소 훈련을 해둬야 한다. 세계적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는 매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한 결과 2001년 9ㆍ11 테러 때 전 직원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사회도 달라져야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는 8만4197명(사망 1090명ㆍ부상 8만310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19조2000억원으로 노사분규로 인한 피해액(5조3000억원)의 3배를 넘는다. 사고가 터진 뒤 수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예방 비용보다 크다. 산업현장이 안전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익도 커지는 법이다. 기업들은 생산성과 효율 못지않게 안전교육과 훈련에 관심을 둬야 한다. 안전교육과 훈련은 비용이 아닌 투자요,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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