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환율이 급락세를 보였다. 어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8원 하락한 달러당 1022.5원으로 마감했다. 2008년 8월 이후 5년9개월 만에 최저치다. 오늘은 1원 오른 1023.5원에서 출발했지만, 국면 전환으로 볼 수는 없다. 원화의 추세적 강세는 지속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측이다.
주목되는 것은 환율의 빠른 추락 속도다. 지난달 9일 1050원 선이 붕괴된 후 불과 17거래일 만에 102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 4월 한 달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05% 상승했다. 주요 40개국 통화 중 절상 폭이 가장 크다. 국내외 시장의 복합적 재료가 원화 값을 끌어올린다. 나라 안에서는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화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데다 수출업체들이 달러화 매도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경상수지는 지난 3월까지 25개월 연속 흑자를 보였고, 무역수지도 지난달까지 27개월째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해외의 달러화 약세 현상이 가세했다. 미국의 국채수익률 하락과 저금리 기조,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겹치며 달러화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환율에 맞서는 기업들의 맷집이 전보다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생산기지가 많고 결제 통화를 다양화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 수출기업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측을 앞지르는 환율 변동은 대기업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환율의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인위적 조절은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이 혼란스러운 예외적 상황일 때만 개입해야 한다'는 경고성 주문을 낸 바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면 어려움도 있는데 그게 환율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시장에서는 환율 세 자릿수 시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속도다. 적절한 속도 조절과 취약기업에 대한 대책은 정부의 몫이다. 기업들도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재료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정부를 바라보며 걱정만 하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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