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갔다던 빅토르 안(러시아)의 소치 동계올림픽 맹활약은 국내 스포츠계를 뒤집어놓았다. 사실 한국도 귀화 외국인 선수 공상정(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이 메달 레이스에 힘을 보탰다. 더 이상 귀화 선수의 활약상은 세계적으로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글쓴이에게 이 소식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자 프로농구 삼성생명이 외국인 선수 앰버 해리스(미국)의 귀화를 추진한다는 얘기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지난 11일 “구단주 모임에서 삼성생명이 해리스의 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196cm의 장신인 해리스는 2012-2013시즌 삼성생명에서 정규리그 25경기에 출장, 경기당 평균 20득점 리바운드 11.2개를 기록했다. 2011년 미국 여자 프로농구(WNBA)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4번)에서 미네소타 링스에 지명됐는데 지난 시즌 WNBA에서는 경기당 평균 2.4점, 1.5리바운드의 성적을 올렸다.
WKBL이 외국인 선수 귀화 카드를 뽑은 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방콕에서 열린 제2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지만 경기 내용은 악전고투였다. 예선리그에서 중국을 72-70으로 잡았으나 일본에 71-78, 대만에 58-63으로 져 중국, 대만과 3승2패로 타이를 이뤘고 골득실차로 3위가 돼 2위인 중국과 준결승에서 맞붙었다. 변연하의 22득점 6도움 활약에 힘입어 다시 한 번 중국을 71-66으로 이겼으나 결승에서는 일본에 43-65로 크게 졌다. 22점 차 대패는 1975년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콜롬비아) 결선 리그에서 당한 62-89 이후 가장 큰 점수 차 패배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준우승의 기록을 남겼다.
하은주와 정선화, 최윤아, 김한별, 한채진 등 주력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기도 했지만 일본의 성장세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치른 결승에서 20득점 18리바운드로 골밑을 장악한 도카시키 라무(192cm)는 예선 리그 한국전에서는 27득점 10리바운드로 날아다녔다. 62-55로 이긴 예선 리그 중국전에서는 20득점 12리바운드를 했고 74-56으로 승리한 대만과 준결승에서는 17득점 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도카시키의 독무대였다. 일본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43년 만에 우승한 여세를 몰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을 노린다.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중국이 3연속 우승했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아시아경기대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인천 대회 정상에 오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할 눈엣가시 같은 선수가 도카시키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까지 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하면서 만들어 놓은 탄력에 23살의 팔팔한 나이인 도카시키를 막는 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해리스가 귀화해 태극 마크를 달게 되면 골밑에서 일본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되고 한국 여자 농구의 전통적 강점인 외곽 슛으로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 그런데 해리의 귀화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나 보다.
외국인 선수가 귀화해 한국 국적을 얻으면 국내 선수로 분류된다. 삼성생명은 외국인 선수를 사실상 1명 더 보유하게 된다. 프로축구의 경우 사리체프(신의손)와 데니스(이성남), 사비토비치(이싸빅) 등이 귀화해 소속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외에 한 명의 외국인 선수를 더 거느리면서 전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농구는 축구나 야구와 달리 외국인 선수가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전력의 절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해리스의 귀화 문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지난 10일 구단주 모임에서는 해리스를 1, 2쿼터 가운데 한 쿼터에 한해 외국인 선수와 동시에 기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탁구계는 중국 출신 귀화 선수 당예서의 국가 대표 선발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당시 당예서는 국내 여자 랭킹 1위이긴 했지만 한국 대표 선수로 뛴 적이 없어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ITTF 랭킹을 우선해 올림픽행이 확실시되는 아시아 예선에 출전할 선수를 뽑자는 의견과 국내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하자는 의견이 맞섰다. 대체로 귀화 선수를 배척하는 듯 한 분위기였다. 논란 끝에 당예서는 베이징에 가게 됐고 김경아, 박미영과 힘을 모아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세부 종목이 된 단체전 동메달을 새로운 조국에 안겼다. 여자 농구 관계자들이 이번 사안을 푸는 데 참고했으면 한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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