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 습격]옹졸한 인간(4)

시계아이콘01분 18초 소요

[낱말의 습격]옹졸한 인간(4) [낱말의 습격]옹졸한 인간(4)
AD


경주 옆 양동마을에 가면 수졸당(守拙堂), 양졸당(養拙堂)이란 당호가 걸린 집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똑똑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똑똑해 보이려고 생쇼를 하는데, 저 사람들은 뭘 믿고 '못남'을 지키려 하고, 더구나 '못남'을 숙성시키려고까지 하고 있을까. 졸(拙)이란 자기 역량과 재능과 학문에 대한 겸허한 디스카운트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사는 가장 귀한 밑천이기도 하다는 생각. 해보았는가. 남들보다 못나기. 남들보다 어리석기. 남들보다 손해보기. 남들보다 덜 가져가기. 졸(拙)에 대한 옛사람들의 사유는, 고졸(古拙)의 경지까지 나아갔다. 옛사람들의 어리숙하고 덜 갖춘 그것이 훨씬 상수(上手)라는 것이다. 못나보이는 경지야 말로 옛 성인들이 추구했던 생의 완전한 면모라는 생각이, '고졸'(요즘의 '고졸 취업콘서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에 대한 패션을 낳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못난이 패션?


옹(壅)은 막혀있다는 뜻이다. 뭔가 툭 트이지 못하고 꽉 막힌 사람. 그 답답이가 바로 '옹'이다. 옹은 뭔가를 껴안는 옹(擁)이나 둘레가 꽉 막힌 옹기그릇(甕)과 닿아있다. 원래 옹(雍)은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뜻하는 의미라고 한다. 어머니의 껴안음, 그 팔뚝 안같은 옹기가 바로 '옹'의 함의이다. '옹'을 이야기하면 모초(茅焦)가 생각난다. 한번 이야기를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모초이다. 그는 중국 제나라 사람으로 진시황의 신하가 되었다. 진시황이 어느 날 어머니인 태후를 '옹(壅)'이라는 땅으로 내쫓아버렸다. 어머니를 '옹'으로 내쫓다니 한자의 의미 그대로가 아닌가. 신하들이 격렬히 그 조치를 반대했다. 진시황은 그 중에 스물 일곱명을 끌어와 큰 솥을 걸어놓고 끓는 물에 사람을 집어넣어 삶았다. 사람 삶는 냄새가 진동하는 자리. 진시황은 그 침묵의 자리에 만족한 듯 좌중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저쪽 말석에서 한 신하가 일어났다. "어머니를 저버린 황제의 행위는 무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게 모초이다. 스물 일곱 명이 삶은 고기가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 진실을 말한 그를 보고 진시황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명령을 내려 태후를 모셔오고 예전처럼 어머니의 공경을 다했다고 한다. '옹'은 진실은 가둘 수 없음을 말한 바로 그 역사적인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옹졸은, 옹하고 졸한 것이다. 옹은 생각이 갇혀있어 답답한 것이고 졸은 아직 생각이 자라지 못해 못난 것이다. 옹졸하기로 말하자면 나만한 자도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 옹졸 때문에 큰 잘못을 피해가는 일도 많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답답하고 어리석어서 저지르는 죄보다, 똑똑하고 잘나서 저지르는 죄가 훨씬 크고 많지 않던가. 최소한 옹졸한 자기에 대해 경계하는 그 마음만 지녀도, 천하의 똑똑이보다 훨씬 나을 때가 많지 않던가.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