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리관리 체계 개선안' 발표
공무원-업체간 유착비리 등 문제해결엔 미흡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숭례문 복구를 둘러싸고 부실공사, 자격증 대여 등 각종 불법행위와 비리가 드러난 가운데 정부가 뒤늦게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문화재 수리분야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감독과 행정처분을 강화하고 수리 현장 정보를 공개하는 등 과거보다 투명성을 더욱 높이는 한편, 전통 재료 연구 및 복원에도 국가차원의 지원을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숭례문 부실 복구의 큰 원인으로 지적돼 온 공사기한 압박, 공무원과 수리업체 간 유착 비리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게 문화재 업계의 반응이다.
9일 오전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서울 경복궁역 고궁박물관에서 발표한 '문화재 수리체계 혁신대책'은 ▲자격 대여 및 부실수리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 강화 ▲자격증 시험의 전문성 강화 및 공무원 특혜 폐지 ▲전통재료 및 기법 계승 지원 ▲문화재 수리 종사자 정보 시스템 구축 및 현장 공개 등이 주요내용이다.
이번 대책에서는 무엇보다 자격증 불법 대여와 부실공사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자격대여자에 대한 자격 취소를 3차에서 2차 위반으로 강화하고, 부실한 설계, 감리, 시공업체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영업정지나 등록취소(3차 위반 시)키로 했다.
문화재청은 또 자격증 불법 대여가 과도한 기술자(기능자)의 의무보유 요건으로 빚어진 측면도 있어, 문화재 수리업 등록 요건에 대해 기술자와 기능자를 각각 4명에서 2명, 6명에서 3명으로 최소화하고 공사 규모에 따라 추가채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문화재 관련 경력 공무원에 대해 수리기술자 자격시험 과목을 일부 면제한 제도도 이번에 폐지했다. 이와 함께 법적 의무 감리 대상 사업을 5억원 이상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에서 1억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자격증 불법 대여는 관행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 수리공사의 입찰 요건은 일정 수의 기술자와 기능자를 갖추는 것인데, 이는 관련 자격증이 증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술자는 공사현장을 관리·감독하는 '현장소장'을, 기능자는 전통 건축·공예 기법을 익힌 이들을 뜻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여하는 자격증 값은 1년에 1500만~1800만원 수준이다. 실제로 대여만 하고, 자격증 소지자 1명 월급으로 소지하지 않는 2명에게 나눠 일을 시키기도 한다"며 "수년간 공무원들도 이를 방치한 면도 있다. 업체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부터라도 감독을 강화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이들이 현장에 배치되고 부실시공이 줄어들 수 있다면 늦게라도 잘 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통 재료 지원사업과 관련해서는 문화재 수리를 위한 목재 건조·비축 시설을 구축하고, 산림청과 협업해 문화재 복원용 목재 대체 수림지(樹林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통안료, 전통 건축재료 등의 복원, 제작기법 규명을 위한 '전통기술소재은행' 구축사업도 추진된다. 또 이 분야의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중요 문화재 수리 현장은 중요공정 때마다 '현장 공개의 날'을 운영하고, 수리현장 참여인력(일반 기능공 포함)과 설계도면, 공사 내역 등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숭례문 복구에서 빚어진 각종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제한된 공사기한'에 대한 내실 있는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상반기 설계, 하반기 시공으로 편성한 촉박한 공기산정을 전년도 설계, 당해년도 수리로 충분한 설계와 고증기간을 확보토록 하겠다"는 것으로는 미흡하다는 평이다.
한 단청 전문가는 "숭례문 복구 공사에서도 3년 내 공기를 맞추려고 장인들이 목재도 제대로 건조시키지 못하고, 단청도 급하게 칠하느라 부실공사가 된 것인데, 문화재 공사를 정권의 치적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공기 문제 말고도 문화재청 공무원들에 대한 업체의 로비라든가 자금력 있는 업체만 독점적으로 공사를 수주하는 문제 등 문화재 수리 분야는 숱한 비리들이 횡행해 왔다"며 "정부나 공무원 스스로 책임과 투명성을 가져야 하고, 문화재 업계 내에 쌓인 여러 불합리한 점들을 하나하나씩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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