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소형의무비율 등 마찰 불가피…수요자 혼선만 커질듯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이민찬 기자]과거 부동산 과열기에 만들어진 각종 규제를 풀겠다는 정부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현 상황과 맞지 않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부동산 시장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각종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중앙부처와 지자체간 마찰이 계속되고 있어 자칫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동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갈수록 힘 커지는 지자체…중앙부처와 마찰=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규제 증가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자체의 등록 규제는 2012년 기준 4만7690건으로 중앙부처 1만5269건(2013년)보다 3.3배나 많다. 지자체의 힘이 갈수록 세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해도 실질적인 인ㆍ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가 호응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이유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그동안 대립해왔던 재건축 소형주택 의무비율, 용적률 완화가 대표적이다.
국토부가 20일 입법예고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은 벌써부터 서울시의 반대에 직면했다. 시행령은 재건축을 할 때 국민주택 규모(85㎡ 이하) 건설비율 60%는 그대로 두되, 소형평형(60㎡) 공급비율 등을 시·도 조례에 위임하고 있는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 등 지자체에 위임한 소형주택 비율 부분을 삭제한 것인 만큼 지자체가 이를 근거로 만들어놓은 조례의 효력이 상실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생각은 다르다.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시행령 상에서 관련 규정을 일괄 폐지하면 혼선만 부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례에서 소형주택 비율을 강제할 수 없다고 하면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유도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법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예측 불가능해져 국민만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했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는 재건축 용적률을 두고도 대립했었다. 국토부는 올 초 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 조례와 관계없이 지자체장이 용적률을 법적상한선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국토부의 도정법에는 1종 주거지는 200%, 2종 주거지 250%, 3종 주거지 300%까지 용적률이 허용된다. 하지만 서울시는 요지부동이다. 여전히 조례를 통해 이 비율을 각각 150%, 200%, 250%로 묶고 있다.
◆전문가들 "불필요한 규제 완화 환영"= 전문가들은 과거 부동산 과열기에 만들어진 규제를 폐지하는 흐름에 대해 "경기 상황을 반영한 옳은 방향"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수요자들의 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과도한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숨죽인 매수 심리를 일깨워 부동산 시장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있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규제는 그 자체로 여러 부작용을 막고 간접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재건축 소형평형 의무비율의 경우 현 시장 상황에서는 굳이 법으로 규제하지 않아도 조합에서 먼저 소형 비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시장에서 이미 소형주택 선호도가 높은 만큼, 실효성이 떨어지는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서울시의 주장과 달리 지자체와 사업 추진 조합의 자율성이 오히려 커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막중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최근 완화된 규제는 서울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고 지자체의 권한과 제도도 다양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성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장은 "기본적으로 정비 사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추진될 수 있게 됐다"며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차례대로 완화되고 있어 사업 추진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국회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의원입법 형태로 규제가 수없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어서 정부에만 규제개혁을 강조한다고 시장친화적 환경이 만들어지기는 힘들다"며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국회와 실질적으로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규제완화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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