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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산불과 소각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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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산불과 소각의 심리학 신원섭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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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게 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수많은 실험과 증명을 통해 밝힌 이 이론은 닻을 내린 곳에 배가 계속 머물 듯 사람들이 어떤 친숙한 체계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이나 그런 심리를 일컫는 용어다.


대부분 비합리적 판단을 비유할 때 통용되는 '닻 내림 효과'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 현실에서 흔히 발견된다.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빠른 '직관'에 비해 느린 '이성' 탓에 합리적인 조정과정을 거친다 해도 그 결정은 이미 내재돼 있는 첫 번째 기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불이란 재난 분야에도 이 개념이 적용되고 있다. 산불과 심리학, 언뜻 쉽게 연관 짓기 어렵지만 그 이유를 살펴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296건의 산불이 나 축구장 면적의 약 800배에 이르는 숲이 불탔다. 원인은 농ㆍ산촌에서 봄철에 습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논ㆍ밭두렁, 농산폐기물 등 '소각' 비율이 40%로 압도적이다.

산림과 인접한 100m 이내 지역에서의 불씨 취급이 산불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 현행법에선 산림관서 허가 없이 불을 놓는 행위가 금지돼 있고 이를 어길 땐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실수라도 산불을 내 다른 사람의 산림을 태우거나 공공을 위험에 빠뜨리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등 엄한 처벌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각에 따른 산불이 꾸준히 느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런 규제와 처벌에도 계속되는 '소각'엔 어떤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산림청이 중앙대학교에 의뢰했던 '심리학적 접근을 통한 소각 산불 예방방안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농ㆍ산촌 주민 대부분이 소각 산불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해왔고, 농사일에도 효과가 있으며, 안전하게 소각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렸을 때부터 마을공동체에서 연중 농사가 진행돼가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며 세워진 소각에 대한 첫 번째 기준이 '닻'이 돼 실제 소각으로 이어지는 행동에 깊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행위가 무거운 형벌이 아닌 마을 내부의 암묵적인 규범으로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이 용역 결과를 토대로 올봄 논ㆍ밭두렁 소각에 따른 산불을 막기 위해 감시ㆍ계도와 관(官)주도의 캠페인 홍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책을 펴고 있다. 그 시도는 바로 마을 단위의 서약을 중심으로 한 '소각 산불 없는 녹색마을 만들기' 캠페인이다.


이번 캠페인은 소각 산불이 대부분 '리' 단위의 농촌에서 일어나는 점을 감안해 이장이 마을대표로 불법 소각을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봄철 산불조심기간이 끝나는 6월8일까지 주민 모두의 자발적 실천을 이끌고, 소각 산불 줄이기에 큰 기여를 했다고 인정되는 마을엔 인증패와 함께 각각 100만원씩 모두 1억원의 포상금을 준다. 실적이 우수한 마을을 뽑아 표창도 해 그 노고를 격려할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관행적인 불법 소각을 규제가 아닌 참여방식의 정책으로 탈바꿈해서 올바른 법질서 확립에 이바지하고, 앞서 언급한 불확실하거나 비합리적 소각에 대한 신념을 공동체의식 활성화와 마을대표의 리더십을 통해 자율적으로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싱그러운 봄이 왔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자칫 울창한 숲을 잿더미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마을공동체가 힘을 모으는 미덕을 기대해본다.


신원섭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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