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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한 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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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한 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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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張良ㆍ?~BC 189)은 고조 유방을 도와 한제국을 건설한 개국공신이다. 소하ㆍ한신과 더불어 건국 3걸로 불린다. 세력이 미미한 유방이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장량의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안목과 전략 때문이었다.


장량의 자는 자방(子房)으로 전국시대 한(韓)나라에서 재상을 역임한 명문의 후손이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킴에 따라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BC 218년 허난성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장쑤성 하비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기인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서를 전수받아 뛰어난 전략가로 탈바꿈 하였다. 진승ㆍ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유방의 휘하에 들어갔다. 유방과 장량의 명콤비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천하통일 과정에서 여러 번 좋은 계책을 내놓아 유방을 사지에서 구하였다. 첫 번째 위기는 홍문연(鴻門宴) 사태였다. 서초패왕 항우는 관중을 점령한 후 유방에게 홍문에서 연회를 제안했다. 항우의 참모 범증은 이 연회에서 유방을 살해하고자 하였다. 당시 군사력은 항우 40만명 대 유방 10만명으로 객관적 전력상 큰 차이가 있었다. 유방과 항우 양대 세력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장량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유방의 손아래 동서인 장군 번쾌에게 항우에게 읍소케 하였다. 번쾌는 "유방은 공로가 대단히 많다. 그런데 제후로 봉하는 상은 고사하고 이간질하는 주변 소인배의 말에 현혹되어 죽이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숨을 걸고 항변하였다. 번쾌의 호소에 항우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그 틈을 이용해 유방은 사지를 벗어났다. 손안에 든 적을 놓친 항우에게 홍문연은 천하패권의 판도가 뒤바뀌는 불길한 전조였다.

그의 두 번째 기책은 한신과 팽월을 유방 편에 확실히 끌어들임으로써 세력 균형을 유방 우위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유방은 소하의 건의에 따라 한신을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왕에 봉하였지만 100% 신임할 수 없었다. 한신 역시 유방이 진심으로 자신을 제왕으로 봉하지 않았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팽월은 양나라 땅을 평정한 공로가 컸지만 유방은 그를 양왕으로 봉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장량은 유방에게 한신과 팽월과 더불어 천하를 향유하게 될 경우 그들이 기꺼이 항우 타도에 나설 것임을 설득했다. 그가 건의한 공천하(共天下), 즉 천하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는 유방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그러나 유방의 군대만으로는 용맹한 항우 세력을 격파할 수 없었다.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유방은 마음을 바꿔 한신과 팽월에게 땅을 나눠주기로 맹약했다. 둘이 병력을 이끌고 유방 측에 가세함으로써 유방 세력이 항우 측을 압도했고 해하의 결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천하통일 후 수도를 어디에 정하는가가 큰 문제가 되었다. 주나라 수도였던 낙양과 진나라 수도였던 관중이 경합하였다. 창업 왕조의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고 예민한 이슈였다. 유방의 주요 장수는 중원이나 남방 출신으로 낙양이 고향에 가까워 낙양을 지지하였다. 반면에 참모 누경은 관중설을 건의했다. 누경은 관중이 방어하기에 더 요충지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누경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낙양은 천하의 중심이지만 공격당하기 쉬우며 면적도 좁고 땅도 메말랐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관중은 반란에 대처하기가 쉽고 물과 말이 풍부하므로 천부(天府)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천하통일의 공으로 유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는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유방의 후계 문제로 여태후에게 자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방은 황제 즉위 후 개국공신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연왕 노관, 한왕 신, 양왕 팽월 등이 연이어 숙청되었다. 유방 진영에 중도에 가담한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제거되었다. 재상 소하도 여러 번 음해를 당했고 한신은 속절없이 주살되었다. 그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을 초월함으로써 장량은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진정으로 천하의 재사가 아닐 수 없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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