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결과, 일체의 학적 없어”…대법원 “주민등록번호 입력만으론 ‘부정사용죄’ 아니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대학교 학사관리팀장이 학적조회 요청을 받고 당사자 허락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조회시스템에 입력한 행위 자체는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창석)는 서울 강남 A아파트 동대표인 김모씨의 주민등록법위반 혐의와 관련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대법원은 “(허락 없이)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한 행위만으로는 타인의 신분확인과 관련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김씨는 동대표 선거관리위원장이 아니었고, 박씨는 동대표 입후보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김씨는 그런 사실이 있는 것처럼 속여 연세대, 중앙대에 박씨의 학력 정보를 요청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1심과 항소심, 상고심 모두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문제는 김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중앙유통단지가 박씨를 채용하려는 것처럼 속여 한양대 학사관리팀에 ‘학적조회 사실 확인요청의 건’을 보낸 사건이다. 김씨는 “한양대에 (박씨에 대한) 일체의 학적이 없다”는 취지의 한양대 회보를 제공받았다.
서울중앙지법(판사 진원두)은 1심에서 “한양대에 박씨의 개인정보가 전자적인 매체에 기록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한양대에 박씨 개인정보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조회한 것은 주민번호 부정사용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1심은 김씨와 관련한 일부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전주혜)는 2심에서 “박씨 동의 없이 사정을 모르는 한양대 담당자를 통해 학적조회 시스템에 입력해 학적여부를 조회하게 함으로써 박씨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2심은 1심이 무죄로 판단한 일부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를 본인 여부의 확인 또는 개인 식별 내지 특정의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이른 경우가 아니라면 부정사용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과거 판례에 주목했다. 타인의 허락 없이 학적조회를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한 행위만으로는 ‘부정사용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의 근거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원심판결 중 주민등록법위반죄 부분은 파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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