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미국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에 따른 신흥국 금융 불안이 경제 회복을 꿈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가 흔들릴 수 있다고 4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일본은 지난해 까지만 해도 닛케이225지수가 57% 상승하며 선진국 가운데 주식시장 흐름이 좋아 주목을 받았지만 올해는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14%나 떨어지며 선진국 주식시장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 중이다. 닛케이지수는 지난해 12월 30일 고점 대비 10% 넘게 하락하며 기술적 '조정 단계'에 진입해 있는 상태다.
일본 주식시장의 하락세는 미국의 돈 줄 죄기와 중국 경제 둔화 불안감이 겹치면서 올해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시총 2조9000억달러 어치가 증발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일본 주식시장은 최근 불안해진 세계 금융시장 분위기 속에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가 급상승 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달러 대비 18%나 하락했지만 현재는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방향을 전환했다. 1월 한 달 동안에만 엔화 가치는 3.2% 상승해 2012년 4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현재는 1달러당 100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 수출에 타격을 주고 기업 실적을 악화시킨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해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 주식시장과 환율 움직임이 아베노믹스를 밀어 붙이고 있는 아베 정권의 지지력을 약하게 해준다고 우려한다. 지난 분기(지난해 10월~12월) 517개 일본 상장사가 평균 45%에 이르는 영업이익 증가세로 일본 경제가 살아났다는 기대감을 싹트게 한 것도 모두 엔화 가치 하락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아직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엔화 가치 상승과 주식시장 하락세로 기업들의 기업 활동 여건이 나빠진다면 일본 경제는 수출 뿐 아니라 소비까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BNP파리바의 코노 류타로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여론은 지금까지 주식시장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에 힘을 얻어 아베 정권의 경제 개혁을 지지해왔다"면서 "그러나 지금 상황은 일본 경제의 구조 개혁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고 경제에 활기를 불러 일으키는 주식시장 마저 고꾸라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를 펴는데 정치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는 4월 일본이 소비세율을 기존 5%에서 8%로 인상할 계획이라는 점도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일본 경제가 외풍(外風)에 휘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자 불안 잠재우기에 나서고 있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일본 경제산업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경제는 여전히 회복 궤도에 올라 타 있으며 외부로부터 밀려온 불안감에 떨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도쿄 소재 투자회사 이토추의 마루야마 요시마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변화가 없다"면서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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