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업무상 재해 시 퇴직금 가산(한국거래소), 자녀캠프 및 사교육비(한국마사회), 장기근속 상품권·여행경비(수출입은행), 대학학자금 300만원(인천국제공항공사), 자녀·배우자 중 1명 특채(조폐공사), 유가족특채(부산대병원), 안식년 휴가(토지주택공사), 초등 4∼6학년 영어캠프(수자원공사), 순직조의금 1억5000만원(한국전력 및 발전자회사).
일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사내복지제도다. 그러나 이들 복지제도는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에 모두 사라진다. 지난달 29일 38개 공공기관(방만경영관리기관 20곳, 부채감축기관 18곳)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에 따라 퇴직금 가산제와 자녀나 배우자, 유가족 등의 특별채용, 고액의 순직조의금이나 과도한 금품지원 등은 모두 폐지된다. 경조휴가, 학자금 및 의료비 지원 등은 대폭 축소된다.
공공기관을 신(神)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기업 부럽지 않은 연봉, 사기업보다 나은 복리후생, 사기업이 부러워하는 직장의 안전성 등이 대표적인 이유다. 공공기관의 연봉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정부가 임직원의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등을 평가하고 결정한다. 정부는 부채 및 방만경영 기관에 대해서는 경영평가를 다른 기관보다 강화할 예정이다. 일부 기관은 고위직에서 연봉과 성과급을 자진 삭감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자산매각과 사업조정 등 개혁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직장의 안전성은 낮아지고 불안정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기댈 곳이 노사 간에 단체협약을 통해 마련해놓은 복리후생이었으나 이마저도 줄줄이 폐지 혹은 축소될 처지가 됐다.
개선 대책에 따라 38개 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지난해(628만원)보다 144만원(23.4%) 줄어든 484만원이 된다. 한국거래소, 마사회,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무역보험공사 등 20개 방만경영 기관은 1인당 복리후생비가 288만원(37.1%) 준다. 한국거래소의 경우는 1인당 1306만원에서 447만원으로, 한국마사회는 1311만원에서 550만원으로, 코스콤은 937만원에서 459만원으로 각각 줄어든다. 사실상 연봉이 깎이는 셈이다.
기관별로 보면 한국거래소는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1400만원이다. 공공기관 중 최고(最高)다. 거래소는 업무상 부상ㆍ사망한 경우는 물론 업무외 사망 시에도 퇴직금을 가산해 지급하는 조항과 조합 임원 인사 시 노조 사전 동의를 받도록하는 조항을 폐지키로 했다. 고교 자녀 학자금 지원은 연간 400만원 한도에서 서울시 국ㆍ공립고 납입금 수준인 연 180만원 한도로 축소하고, 직원 및 가족 의료비 지원 혜택은 폐지하되 선택적 복지제도로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
한국거래소의 전산 분야 자회사로 평균 연봉이 9480만원인 코스콤은 자율형사립고 및 특수목적고까지 포함한 고교생 자녀 학자금 지원을 서울시 국ㆍ공립고 수준 한도(연 180만원)로 줄이고 의료비도 본인에 한해 선택적 복지 형태로 지원하기로 했다.
평균 연봉 9400만원의 한국마사회는 자녀의 캠프참가 비용과 사교육비까지 지원하는 조항이 물의를 빚어 이를 전면 폐지키로 했다. 퇴직금 산정 시 경영평가 성과급을 제외하기로 했으며, 1인당 30만원 지급했던 직원 및 가족의 건강검진비 지원도 없애기로 했다.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는 한국수출입은행은 연간 6회에 걸쳐 총 165만원을 지급하던 기념일 상품권 지급 관행을 연간 4회로 축소하고 지원액도 매회 5만원 한도로 줄이기로 했다. 장기근속자에게 지급하던 상품권 및 여행경비 지급 관행도 폐지하기로 했다.
각종 비리와 부정이 끊이질 않아온 강원랜드는 대학생 자녀 학자금 전액을 무상지원 해왔으나 이를 융자지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전액 지원해줬던 중ㆍ고생 자녀 학자금도 앞으로는 고교생 자녀에 한해서만 서울 국공립고교 수준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판 음서제'로 비판을 받았던 정년퇴직 조합원 직계가족에 대한 우선채용 조항은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부채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된 18개 기관도 방만경영개선 대책을 함께 내놨다. LH는 무급 자기계발 휴가나 안식년 휴가를 폐지하고, 직원가족 특별채용과 노조의 구조조정 결정 개입 권한을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대학생 자녀 학자금 무상지원을 성적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장학제도로 전환하고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은 업무상 재해로 순직 시 지급하던 1억5000만원 수준의 특별조의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노조들은 정부와 사측을 상대로 전면전에 나설 태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꾸린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양대 노총 공대위)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은 부채 등 공공기관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며,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회피를 위해 공공기관과 그 종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의 주장처럼 144만~288만원의 복리후생비를 줄여서 부채 문제가 해결된다면 충분히 협의할 수 있으나, 현재의 '정상화대책'은 이번에 밝혀진 것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과 결론인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잘못된 정부정책(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책임자 처벌, 이를 무조건 수행하게 만든 공공기관 부적격 낙하산 근절을 정부가 우선 시행하여야만 한다"면서 "만약 정부가 지금처럼 일방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부채 책임을 전가, 왜곡하는 데 급급하다면 '정상화대책' 실행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일체의 단체교섭을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향후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경영평가 무력화ㆍ거부 투쟁, 지방선거에 대한 공동대응, 총파업 등 투쟁을 펼쳐 나갈 것"이라면서 "상세한 계획에 대해서는 양대 노총 공대위 대표자 회의 및 5일 예정된 공대위 산하 특별대책위원회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하고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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