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사고의 여파로 주민등록번호 개혁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정부기관 등 공적 영역과 금융기관 등 사적 영역에 걸쳐 두루 이용되는 전 국민 대상의 평생불변 개인식별 코드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독특한 제도다. 이 같은 주민등록번호의 특수성이 개인의 신상정보 유출은 물론 그로 인한 권익침해나 범죄피해 등 2차 피해의 위험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최근 금융정보 유출 사고에서 드러났다.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을 계기로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그대로 놔두고 그 수집ㆍ보관ㆍ관리에 대한 통제만 강화해보려고 하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미봉 내지 절충의 선에서 머뭇거린다. 어제 금융위원회가 금융과 부동산 업계는 주민등록번호 요구 금지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단적인 예다.
금융위와 달리 인권위원회는 주민등록번호 제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어제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성명서'를 통해 "생년월일ㆍ성별ㆍ출생등록지역 등 개인정보가 포함되는 현 주민등록번호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임의의 숫자 조합으로 바꾸고, 누구나 법원의 허가를 얻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해외에서까지 나돌고 있는 실태도 우려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이나 바이두 같은 해외 인터넷 포털에서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와 관련 개인정보가 검색된다.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주민등록정보 리스트나 데이터베이스 파일이 암거래된다고 한다.
단기 대책으로는 조세와 안보 등 최소한의 공적 목적을 제외하고는 공적 기관이든 민간 업체든 일절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인권위의 권고를 참고하여 주민등록번호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방안을 연구해보자. 예상되는 부작용도 따져봐야 하니 졸속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효율성을 다소 떨어뜨리더라도 지금은 그 보안성을 크게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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