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박지성(33· PSV 아인트호벤)의 국가대표팀 복귀 여부가 화젯거리였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8일 이 문제와 관련해 박지성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을 때부터 염두에 뒀다고 했다.
홍 감독이 박지성을 두고 적잖은 고민을 했을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을 때 거의 모든 축구 팬은 선수 본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며 결정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이 끝난 뒤의 일이다. 그 뒤 복귀 문제가 이따금 거론될 때마다 대체적인 의견은 “박지성은 한국 축구를 위해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흐름에도 일부 팬은 대표팀 복귀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
시곗바늘을 1985년으로 돌려 본다. 그해 서독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활동하던 차범근의 대표팀 합류 문제는 현 박지성의 국가대표팀 복귀 문제만큼 관심을 모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논란거리였다.
요즘 시각으로는 논란이 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1985년 2월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는 차범근을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축구계는 찬반양론으로 들끓었다. 그 핵심은 차범근이 과연 전력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유럽에서 맹활약하는 차범근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한국을 오래 떠나 있었기 때문에 대표 선수들과 융화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차범근은 1983~84시즌까지 52골(리그 46골 컵 대회 6골)을 터뜨리며 분데스리가에서 ‘갈색 폭격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반대 주장 가운데에는 융화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표팀의 팀워크를 깰 수도 있다는 말까지 있었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일이나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차범근의 대표팀 합류 문제는 예선에서 싸울 나라들이 말레이시아, 네팔(1차), 인도네시아(2차) 등 약체라는 이유로 일단 물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차범근은 그해 4월30일 레버쿠젠과 재계약하면서 대표팀 합류와 관련해 이면 조항을 넣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예선 때 대한축구협회가 합류를 요청했으나 이면 조항을 마련해 놓지 않아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소속 클럽은 프랑크푸르트였다.
그리고 그해 10월30일 서독의 축구 전문지 ‘키커’는 ‘차범근, 멕시코 간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차범근이 한국 대표 선수로 뛰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고국의 부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키커’의 보도가 나고 한 달 반쯤 뒤인 12월16일 멕시코 월드컵 조 추첨이 있었고 한국은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A조에 편성됐다. 세계적인 축구 강국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1978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튼 그해 연초와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조 추첨 직후 김정남 감독은 차범근의 대표팀 합류를 대한축구협회에 요청했고, 최순영 회장은 곧바로 차범근을 대표팀에 뽑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차범근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대표팀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나흘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차범근의 합류 결정이었다. 차범근은 당시 “(나는) 분데스리가 선수가 아닌 한국 대표팀의 22분의 1일 뿐이다(당시 월드컵 엔트리는 22명). 월드컵 무대에서 뛰게 돼 큰 영광이다”라는 말로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8년여 만에 태극 마크를 다시 달게 된 기쁨을 표현했다.
축구 팬들이 알다시피 멕시코 월드컵에서 차범근은 골을 넣지 못했다. 그러나 ‘차붐’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면서 최순호, 김종부 등 후배들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줬다. 차범근은 멕시코 월드컵 뒤 1986~87, 1987~88, 1988~89 시즌까지 3시즌 더 분데스리가를 누볐고 리그 308경기 98골, 컵 대회 27경기 13골의 빛나는 훈장을 달고 금의환향했다.
멕시코 월드컵 때 차범근은 33살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둔 박지성의 올해 나이 역시 33살이다. 이 대목에서 한마디 덧붙이면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축구 팬들은 한 번 더 그의 뜻을 선선히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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