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새해는 2014년 갑오년으로 청마의 해라고 합니다. 갑오의 갑(甲)이 푸른 색을 의미하는데, 청마는 진취적이고 활발한 기운을 품고 있으며 행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 나무처럼 곧은 정신을 함의합니다. 아시아경제는 새해를 맞아, 경장(更張)정신을 한 해를 관통하는 슬로건으로 삼고자 합니다. 경장은 바꾸고 펼친다는 의미로, 개혁을 구체적인 동사로 표현한 말입니다. 바꾸는 것은 기존의 판을 혁신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펼치는 것은 그 새로움 위에 시대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는 일입니다.
갑오년의 푸른 말은 개혁을 뛰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확하게 120년 전 갑오경장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고종31년)의 일입니다. 그 해 봄날엔 호남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썩은 정치를 제대로 바꾸라는 요구를 하며 전라도를 휩쓸었고 전주성을 점거했습니다. 이 농민군들은 정부군과 협상을 벌여 개혁의 민심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6월에 민씨 정권이 혁명의 진압을 위해 청(淸)에 파병을 요청하는 일이 벌어지자, 일본이 기다렸다는 듯 조선에 군대를 파견합니다. 아산과 인천에서 청일(淸日) 양국 군사가 쇄도하는 상황에서 7월 23일 일본군이 조선 궁궐에 침입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립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을 영입해서 새로운 정권을 수립합니다. 같은 달 27일에 군국기무처가 설립되고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친일 내각이 꾸려집니다. 이들이 추진한 것이 바로 갑오경장입니다. 이 개혁은 국민들의 반일감정으로 19개월 만에 중도하차했습니다.
갑오경장의 개혁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광범위하고 획기적입니다. 첫째는 시스템 개혁인데, 왕과 관련된 업무를 국가운영 업무와 분리한 것이 핵심입니다. 궁내부와 의정부를 따로 둬 왕이 통치하는 전근대적 체제를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근대적 체제로 바꿨습니다. 둘째는 사회적인 개혁으로 문벌과 신분 계급을 타파하고 인재 등용의 방법을 쇄신하였습니다. 노비제도를 폐지하고 당시의 악습이던 조혼(早婚)을 금지시킨 것도 눈에 띕니다. 여성이 재혼을 하는 것이 허용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경제개혁도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우선 통화를 정비했으며 조세를 금으로 받는 제도를 확립하였고 도량형도 통일했습니다. 은행과 회사의 설립이 제도화된 것도 이 개혁 덕분이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광범위한 근대적 혁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개혁이 부정적으로 평가돼온 것은, 자율적으로 일어난 변혁이 아니라, 일제의 강요로 말미암은 타율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갑오경장의 이면에는, 청(淸) 세력을 밀어내고 조선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계략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런 원천적 결함 때문에 개혁이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경장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조선 후기의 실학운동에서 비롯된 근대정신의 발아(發芽)가 갑신정변과 동학농민혁명을 거치면서 개혁에 대한 내재적 지향으로 발전해왔고 그것이 갑오경장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당시 반일(反日)의 국민정서가 개혁을 현실적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지만, 그 정신 속에는 이 땅의 진보적인 혁신성이 숨어있다고 보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한계에 부딪쳐 사라지고만 이 혁신운동을 120년 만에 이 땅에 되살려 위대한 시대정신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경장(更張)이란 말은 원래 거문고의 줄을 고쳐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에서 나온 말입니다. 옛 중국 한나라의 박사였던 동중서(董仲舒)가 새로 즉위한 황제인 무제(武帝)에게 인재를 등용하는 방안에 대해 진언하면서 썼던 표현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문고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악사라도 제대로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혁신을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정치가라도 잘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해현경장이란 말은 기업들이 자주 화두로 삼아온 표현이기도 합니다. 2009년 삼성의 인트라넷 초기 화면에는 이 글귀가 씌어져 있었고, 2013년 들어서는 김기문 국세행정위원장과 CJ E&M의 강석희 대표가 해현경장으로 혁신을 벼뤘습니다. 최근(2013.12.23) 박근혜 대통령도 이것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120년 전 갑오경장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는데, 내년 갑오년에는 꼭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이 되도록 사명감을 갖고 일해주십시오."(수석비서관회의)
아시아경제는 갑오년을 맞아 해현경장의 정신을 신문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경제언론으로서 혁신 모티브를 제공하는 선도적 기능을 자임하고자 합니다. 해현경장의 말을 분석해보면, 해(解)의 정신과 경(更)의 정신, 그리고 장(張)의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해(解)는 풀어내는 정신으로 기존의 문제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고장 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분명히 해야 개혁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경(更)은 과감하게 바꾸는 혁신행위를 말합니다. 낡은 것을 교체하고 변화의 두려움을 떨치는 것이 이 과정에 필요한 역량입니다. 장(張)은 혁신으로 바꿔놓은 것을 제대로 지켜가는 일입니다. 혁신을 더욱 강화하여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거문고 줄을 갈아끼운 뒤 그것을 팽팽하게 하여 제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혁신의 시스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지는 이런 경장정신을 세 가지 영역에서 뿌리내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신문 편집정신입니다. 한국 신문의 굳은 지형을 뒤흔들고 혁신적인 지면으로 독자를 만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신문 관행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한 편집과 새로운 콘텐츠로 독자들의 새로운 요구와 만나려고 합니다.
둘째는 경제의 경장(更張)입니다. 지속되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제주체들에게 힘이 되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시장경제를 강화하고 국가의 번영을 추구하는 정책들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충실히 하겠습니다.
셋째는 글로벌 시대의 국제적 경장(更張)입니다. 갑오경장 때 우리는 국력의 쇠약으로 변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이웃이며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그들과 어떻게 조화롭고 지혜롭게 공존하느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나가고자 합니다.
넷째는 미래지향적인 경장(更張)입니다. 스마트문명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산업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앱, 게임, 스토리 등 콘텐츠 관련 산업에 과감히 도전하여 시장의 판을 넓히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또 창의적인 역량으로, 숨가쁘게 움직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분석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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