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상임감사다. 공공기관 낙하산 얘기다. 근래 비전문가 출신의 친박(親朴) 인사들이 도로공사, 마사회, 지역난방공사 사장 등을 줄줄이 꿰찼다. 최근엔 상임감사 자리에도 낙하산이 잇따른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돼 온 고질이 박근혜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기에 혹시나 했지만 마찬가지다.
한전은 지난 19일 상임감사에 안홍렬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제17대 대선 박근혜 경선후보 서울 선대본부장을 지냈다. 서부발전과 중부발전에는 역시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송규 전 대한기술사회 회장, 구자훈 파미힐스컨트리클럽 공동대표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석탄공사, 농어촌공사 등 현재 상임감사 선임 절차를 밟고 있는 10여개 공기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파티는 끝났다'는 말로 부채가 500조원에 달하는 295개 공공기관의 개혁 바람을 예고했다. 엄포가 아니었다. 한 달여 후인 지난 11일 '정상화 대책'을 내놨다. 부실 공공기관은 진행 중인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현재 220%인 부채비율을 2017년엔 20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뼈대다. 과도한 직원 임금과 복리후생도 조정, 축소하도록 했다.
며칠 전에는 현 부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개혁에 소극적인 기관장들을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내년 1월엔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장들을 소집할 예정이다. 내년 3분기 말엔 중간평가도 실시한다. 사업축소, 복지감축 등 개선작업이 미흡할 경우 해당 기관장을 임기와 상관없이 해임할 방침이다. 이전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개혁을 말하면서 '방만경영'과 '과도한 복지'의 원인으로 지적돼 온 낙하산은 계속 내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화 대책에서 국책사업 떠넘기기 등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슬그머니 피해간 건 낙하산에 비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기관장에 더해 방만경영을 감시해야 할 상임감사까지 낙하산을 내려 보내면서 개혁을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애당초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에 강경 대응하는 명분도 개혁이다. 경쟁을 통해 코레일의 고비용 저효율 '철밥통'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17조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해마다 직원 월급을 올리고 성과급까지 챙겨주었다. 능력에 관계없이 3급(차장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에 징계 취소에 위로금까지 얹어준다. 직원 자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고용세습제도 있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 탓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낙하산 경영진이 개혁에 나서기는커녕 노조 반발을 달래려 처우를 높여주는 뒷거래를 하고 노조는 낙하산을 반대하는 양하면서 야금야금 이득을 챙긴 야합의 결과다. 노사가 한통속이 돼 부실을 키워 온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철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낙하산을 내려 보낸 당연한 귀결이다.
박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을 두고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원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원칙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전 정권의 낙하산 출신을 내뽷으려 '낙하산은 없다'고 하고는, 뽷아 낸 빈자리에 내 사람을 내려 보내는 걸 뭐라 해야하나. 남이 하면 낙하산이고 내가 하면 '국정철학 공유'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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