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주병은 비었고, 순대와 라면은 반쯤 남았다.
“나갈까?” 하림이 말했다. 소연이 발딱 일어나서 먼저 지갑을 꺼내 값을 치르고 있었다. 하림은 말리려다가 그냥 두었다. 밖으로 나왔다. 벌써 땅거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허름한 골목 여기저기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디오의 음악이 뒷꽁지에 따라왔다.
‘...소중했던 우리 푸르른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소연이 슬그머니 하림의 팔짱을 꼈다. 하림은 어쩐지 허전하고도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아까 오빠 했던 말, 따로따로 함께, 농담 아니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연이 말했다.
“응. 싫음 따로따로란 말은 빼든지.” 하림이 실없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럼, 그 언니는 어떻게 되나요? 하림 오빠 기다린다는 그 언니 말이예요?”
“응. 그 사람.....” 하림은 소연에게 팔짱을 맡긴 채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아마 이번에 떠나면 아주 돌아오지 않을거야. 예전에도 그랬지. 그 사람에겐 독특한 열정이 있어. 개척자 같은 열정 말이야. 그런 사람은 결코 새장 속의 새가 되지 못해.” 말을 하는 동안 하림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런 그녀에겐 예초부터 오토바이 짱, 태수형 같은 사람이 더 어울렸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말했었다.
‘내가 그이랑 결혼한 건 내가 철이 없어서 저지른 일만은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 그인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았어. 흔히들 아웃사이드라 불리는 그런 류의 사람들처럼 말이야.’ 그녀가 아프리카 어딘가로 떠나는 것도 스스로 그런 아웃사이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 혜경에게 그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으면 될 것이었다. 그게 그녀가 진정 바라는 바인지도 몰랐다.
“하림 오빠! 우리 영화나 한 프로 보러 갈까요? 신나는 영화....” 심각한 분위기를 떨쳐버리기라도 하는 양 하림의 팔을 힘차게 채며 소연이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좋지. 근데 언니는 어떡하구?” 하림이 걸음을 멈추며 짐짓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연을 돌아보았다.
“이야기했어요. 낼 모레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대요.”
“그래?” 하림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팔에 걸린 소연의 몸이 다소 무거워졌다. 그녀가 머리를 기울여 살짝 장난스럽게 하림의 어깨에 기댔기 때문이다. 파마한 머리카락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아까 분식점에서 들었던 ‘자전거 탄 풍경’ 의 노랫말이 내내 머리 속에서 울림통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 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걸어가는 동안 눈앞이 자꾸 흐려져왔다. 저만큼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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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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