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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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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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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냐 하면 그래도 진담에 더 가까웠다. 처음엔 물론 농담이었다. 그냥 머리 속에 떠올라서 뱉어본 말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혜경이 마저 떠나고 나면 딱히 기다려줄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었다. 자기 말마따나 한번 결혼했으면 됐다고 생각할 것이고, 은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곁엔 하림의 자리가 예시당초 없었는지 몰랐다.


지난 겨울, 노란 털장갑을 받고 감동 먹은 표정을 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엄연히 다르다. 사랑은 감동을 먹고 살 수 있지만 결혼은 생활이라는, 일상의 지루함과 잔인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준비와 각오가 없다면 그런 결혼은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어쩌면 혜경은 이미 그걸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넌 결혼 안 해 봐서 몰라. 폭풍 같은 한 순간이 지나고나면 일상적인 삶이란 놈이 기다리고 있지. 그게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니야. 한번 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하림이 넌 멀쩡한 여자 만나 멀쩡한 결혼을 하면 좋겠어. 난 아니야.’ 혜경이 말했던 그 멀쩡한 여자가 바로 지금 자기 앞에 앉아있는 소연이가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첫눈에도 좋았지만 소연이처럼 편한 경우도 드물었다. 이런 허름한 집에 들어와 같이 순대와 라면을 먹어도 왠지 그녀와 함께 있으니 편하고 행복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떤 선배의 말처럼 인생이 뭐 별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주병이 반쯤 비었을 무렵 라면이 나왔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이걸 보니까 살구골 화실 생각이 나네.” 하림이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혼자 후후거리며 먹던 라면 말이야.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양철지붕에서 콩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 맛있었어.”


“모헨조다로 이야긴 다 썼어요?”


“응. 넘겼어.” 하림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운학이 아저씨, 이장님 말이예요. 불쌍해요.” 소연이 무슨 생각 끝인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래. 화실에 와서 라면이랑 소주랑 마시며 혼자 떠들다 가곤 했지. 겉보기엔 다리도 절고 말도 우락부락해 보였지만 무척 섬세한 사람이었어. 낭만적이기도 했구.”


“그래도 그 골짜기에 그 아저씨가 있어 좋았어요. 나한테도 무척 잘 해주셨는데....." 하림의 젓가락질이 자기도 모르게 바빠졌다.


“이층집 여자랑 잘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런 그를 보며 소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침 라디오에서 ‘자전거 탄 풍경’ 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후후거리며 라면을 먹던 하림의 눈가가 까닭 모르게 젖어왔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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