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장성택의 실각과 처형이 우리에게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엔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다. 현재 나오는 보도들 역시 북한 내부 동향을 간접적으로 살펴보는 데 집중돼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와 동북아 지역안보에 미치는 영향에서 의미를 가진다. 반면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주변만 건드리는 수준에서라면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술렁임은 과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북한 내부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연다. 적시에 이루어지는 회의는 안정감을 주지만, 과연 박 대통령이 내부의 혼란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숙고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분열로 치닫게 한 여러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장성택 사건의 잠재적 영향력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1년 전 박근혜 후보는 '100%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이란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것은 박 대통령이 이끌어갈 5년에 기대를 걸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34년전 끝난 부친의 정부가 남긴 끝나지 않는 질문들, 이후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수많은 갈등의 출발점인 그것을 극복하려는 운명적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주창한 창조경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의 전략으로 삼은 성장정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다. 경제민주화 역시 수출의 종교화와 재벌 육성 정책의 부작용을 해소할 시대적 사명이다. 박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는 지역균형발전도 근대화 과정에서 희생된 농촌, 지역편중 개발의 후유증에 대한 대답으로 들렸고, 복지공약은 그 시절 산업역군들의 쓸쓸한 노년을 어루만지려는 손길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대통합'이란 구호는 희망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우리는 지리한 정쟁과 악담, 저주 속에서 지난 1년을 보내야 했다. 우리 사회가 '100%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에서 오히려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된 책임에서 박 대통령은 자유롭지 못하다.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부친에 대한 재평가나 그 시절 정책의 불가피성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계승'하는 데도 있지 않다. 반면 당시 잉태된 여러 사회ㆍ경제ㆍ문화적 모순들에 용감히 접근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데 더 가까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박 전 대통령의 긍정적 업적에 대한 평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 사회를 휘감은 많은 갈등들은 사실상 친(親) 박정희와 반(反) 박정희의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최근의 것들도 여기에서 벗어나 해석하기 어렵다. '댓글녀'가 오피스텔에서 잡힌 것은 우리가 마침내 해결해야 할 해묵은 갈등 구조가 다소 해괴한 모양새로 터져 나온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가 장성택보다 더 시급하게 논해야 할 것은 대학생들의 대자보에 어떻게 응답할 것이냐이며, 철도파업 문제를 1970년대가 아닌 2013년 시대정신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것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우리의 전진을 끈질기게 방해하고 있는 40년 굴레를 벗어던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먹고 사는 대한민국'을 넘어 '100% 대한민국'으로 진화하는 2대에 걸친 대작업의 통과의례이며,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자, 기회 그리고 책임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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