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국회가 국가정보원 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댓글사건이 정보기관의 국내정치 개입 등 국정원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면 장성택 사건은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 같은 국정원의 공과를 두고 국정원 개혁의 방향에 대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정원 개혁에 불을 지른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2월16일 대선후보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며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이후 1년간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은 계속 쟁점이 됐다. 이후 검찰조사 결과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다는 '팩트'는 사실로 확인됐다. 이후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은 73개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자동프로그램으로 생성해 퍼트린 트윗글 2200만개가 추가로 확인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으며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이어졌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은 국정원의 존폐를 거론할 만한 사안이다. 이후 검찰 조사가 여러 가지 정황을 밝히겠지만 사안에 따라선 1997년 국세청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모금한 이른바 '세풍'사건에 버금가는 '국기문란사건'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북한 내에서 벌어진 장성택 처형을 둘러싼 일련의 남북 간 정보전은 그러나 국정원에겐 기사회생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 보고라는 형식을 통해 장성택 실각과 측근 처형을 처음으로 공개한 곳이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정보전에서 '대박'을 친 것이다. 우리 언론이 연일 장성택 관련 보도를 쏟아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마침내 장성택 실각과 그의 처형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하기에 이른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북한이 장성택 관련 숙청 사실을 이렇게 빨리 확인할 줄 몰랐다"며 "국정원 정보가 틀렸다거나 했다면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장성택 사건 이후 "그동안 국민의 우려를 자아낸 우리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능력을 보여줬다"며 "국정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성택 사건은 국정원 개혁방안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당에서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대북·해외 정보수집, 사이버 테러대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약속했던 민주당 역시 대북·해외 정보수집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국내파트의 축소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예산통제권을 강화해 보다 투명한 국정원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의 심사를 받지 않는 연간 4000억원 규모의 국가정보원의 예비비를 통한 예산 사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해왔다. 국정원 예비비를 대폭 삭감하고 총액 수준으로만 보고해왔던 예산을 항목별로 보고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도 예산을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며 "예산 통제는 현재 수준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도 예산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국정원개혁특위는 16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 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연다. 이어 18~19일에는 개혁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국정원법, 국가공무원법 등 소관법률안 개정방안을 논의한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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