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1운동 간토대지진 피해자 명부 뒤늦은 공개에 여론 질타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19일 공개된 3·1운동과 간토대지진의 피해자 명부가 피해자들의 일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3·1운동과 간토대지진도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청구권에 대한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이 5억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제시한 청구권 요강은 총독부 채권, 조선은행 예금, 일본 공채, 미수금, 보상금 등 8가지였다. 3·1운동과 간토대지진에 대한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일단 정부는 상세한 분석 작업 후 추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피해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을 보였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지난해 대법원이 손해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판결을 내려 '3·1운동'이나 '간토대지진'의 경우도 개별소송을 통해 청구권에 대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일본 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근목(87)씨 등 5명은 5년에 걸친 법적분쟁 끝에 지난 7월 파기환송심에서 "미쓰비시는 각 8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1, 2심 모두 "소멸시효가 다했다"는 이유로 이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이씨 등이 소송을 제기할 시점까지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 판결대로 '소멸시효'가 문제되지 않는다면 추가로 발견된 피해자들도 개별소송을 진행할 경우 청구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쓰비시 소송을 대리했던 최봉태 변호사는 "피해자를 찾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들이 일본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을 의지가 있다면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요구해야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법원은 '강제징용'을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판단하고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결론냈다"며 "3·1운동과 간토대지진의 피해자도 개별소송이 진행될 경우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 명단이 이제야 밝혀진 데 대해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 변호사는 "1953년에 만들어진 서류가 6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발견된 것은 우리 정부가 일본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됐는데 국가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올 6월에 문서가 발견되자마자 정부는 유족을 찾았어야 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이강수 연구원은 "기록이 왜 이렇게 늦게 발견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며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대 초반은 정부 기록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기록물들이 대부분 통째로 사라져 존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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