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이 'K-문학'에 대한 세계화 라이선스인가.' 10월이면 어김없이 우리 문학계는 한송이 노벨 문학상을 위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운다. 스웨덴 한림원을 향한 일방적 애모는 고은 시인이 수상 후보로 거론된 이후 수년째다.
수상자 발표가 끝나면 문학계의 한풀이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들은 "문학을 홀대하니 될 턱이 있냐"며 정부의 본분을 나무란다. 나아가 한글의 난해함부터 세계인과 일치하지 않는 한국적 감성 코드, 국력 등에 이르기까지 숱한 자조와 비판이 뒤따른다.
게다가 일본, 중국과 저울질하며 한림원의 무식을 탓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노벨 문학상이 콩쿠르 대회라면 벼락치기라도 할 기세다. 개중에는 "노벨 문학상만이 한국문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전부는 아니다"라며 짐짓 점잔 떠는 축도 보인다. 그러면서 쩝쩝 입맛 다시기 일쑤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외국인 수용자, 수상 결정자들을 향해 떠들고, 들이대고, 쥐어주고, 힘을 쓰면 되는 일처럼 착각하는 데서 나온 얘기들이다. 즉 마케팅의 실패를 거론한다.
그 한풀이는 딱 일주일이다. 기왕 시작한 김에 진달래 꽃 바구니까지 즈려밟을 만큼 좀 더 한풀이를 하자면 한국적 문화 풍토에선 노벨 문학상은 언감생심이다. 여전히 '강남 스타일'에 취해 문화 장사에 여념 없고, 삽질에 찌들어 '공사판 한국'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한 노벨 문학상은 허울에 불과하다.
지금 분서갱유와 검열이 폐지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됐는가? 수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최고은처럼 죽음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떨고 있는 것이 사라지기라도 했는가? 수천기가바이트 용량으로 표현되는 디지털 로드가 열렸다고 집단지성이 꽃피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소통의 대세가 이뤄졌는가? 무엇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해 한탄하는 게 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우리 문학이 처한 현실 중 몇 가지만 짚어보자. 지난 정부 내내 인문학자들이 인문학 부흥을 부르짖는 동안 기초 예술지원 7개 분야 중 문학분야 지원은 총 관련 예산의 4% 수준으로 꼴찌다. 그나마 이번 정부는 문학창작자에 대한 간접지원 성격을 지닌 40억원 규모의 문학나눔 사업마저 폐지했다. 21세기판 분서갱유인 셈이다.
다른 지표는 더욱 참담하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4만2157개 출판사 중 94%인 3만9620개 출판사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발간하지 못했다. 2003년에 92.7%였던 무실적 출판사는 2012년 들어 94%를 기록, 최근 10년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우리 문학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동안 벌어진 일이다.
즉 소규모 출판사들이 경쟁력을 상실해 버틸 수 없는 구조다. 무실적 출판사 증가로 출판의 다양성과 양질의 출판이 사라지면서 출판생태계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형서점의 독과점, 도서정가제 붕괴, 사재기 등 전근대적인 마케팅이 판치는 현실에서 출판사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문학류는 자기계발서, 재테크 서적에 밀려 전체 출판시장의 1%에 불과하다. 해외에 번역ㆍ소개되는 작품은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 설립 이후 10월 현재까지 30개 언어권, 900여건 미만이다. 그 중 스웨덴어로 번역ㆍ출판된 작품은 고은 4종, 이문열 2종, 황석영 2종이다. 최근 10년 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평균 6.6권 출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국내 성인인구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한 권에도 못 미친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 유엔(UN) 191개 가입국 중 161위다. 이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들이다. 정작 노벨 문학상을 받고 싶다면 한국문학이 살아갈 토대부터 새로 닦는 것이 옳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