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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 원화값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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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2008년 10월, 원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제대로 쓴맛을 봤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수장들이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통화 맞교환을 사정했지만,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은 냉담했다. 미국 은행들은 당시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후 한 달도 안돼 500억달러가 넘는 돈을 한국에서 빼갔다. 두 번째 환란 우려가 번졌다. 원화 가치가 땅에 떨어져 연초 900원대였던 환율이 1400원 위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푸대접 받던 원화가 5년 만에 '귀하신 몸'이 됐다.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 가능성으로 신흥국 돈값이 뚝뚝 떨어지지만 원화값은 나홀로 강세다. 달러화 대신 원화와 해당국 통화를 맞교환하는 통화스와프 계약도 한창이다.

원화 강세는 길고 견고한 흐름이다. 3분기 미 달러화 대비 원화 절상률은 주요 20개국(G20) 중 두 번째로 높았다. 9월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074.7원으로 6월 말보다 67.3원이나 떨어졌다. 원화 가치가 석 달 만에 6.3%나 올랐다는 얘기다. 이 기간 G20 국가의 통화 중 원화보다 절상률이 높았던 건 영국 파운드화(6.4%) 뿐이다. 원화 뒤로 유로화(4.0%)·캐나다 달러화(2.0%)·호주 달러화(2.0%)가 줄을 섰다.


이런 분위기는 신흥국의 돈값 하락세와 대조된다. 3분기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12.4%나 절하됐고,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7.0% 돈값이 떨어졌다. 인도의 루피화와 터키의 리라화 역시 5% 남짓 가치가 하락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연저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23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0원 떨어진 1055.8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1월11일 기록한 1054.7원 이후 최저치다. 당국의 개입이 변수지만, 머잖아 이 기록도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숫자로 나타나는 원화가치 상승세는 결국 '한국 경제를 믿는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무거운 복지가 변수지만, 선진국 중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손에 꼽을 만큼 괜찮다. 19개월째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와 증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도 원화값을 밀어올리는 동력이다. 외국인은 23일에도 2000억원 이상을 사들여 39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갔다. 미국의 QE 축소 연기도 원화 강세를 부추기는 중이다.


문제는 원화값 상승의 이면이다. 떨어지는 환율은 수출기업에 채산성을 떨어뜨리는 악재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환율 효과가 수출기업에 주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환율 마지노선'을 말하며 당국의 개입을 종용하지만,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2011년 원화 절상에 따른 부가가치 민감도는 -0.05%로, 2005년 -0.15%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영향력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수출기업의 채산성 하락을 환율 탓만으로 돌리기엔 멋쩍은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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