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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평가, 민간社 3곳이 ‘과점’…11년간 시장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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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산정 복잡해 관리감독 없이 그들끼리 운용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지난 2000년 이후 채권평가사 3사의 과점체제가 10년 넘도록 이어지며 쌓인 문제점이 하나 둘 터지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는 물론 금융감독당국의 대응방안이 요구된다.

국내 채권평가 시장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0년 민간 채권평가사 설립이 허용되면서다. 신용평가사 3곳이 저마다 자회사로 채권평가사를 설립했고, 지금도 KIS채권평가와 NICE피앤아이(옛 NICE채권평가)는 각각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의 계열사다. 한국자산평가(옛 한국채권평가) 역시 한국기업평가의 계열사였으나 지난해 사모펀드인 투썬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지난 2011년까지 11년 동안 국내 채권평가는 이들 3개사가 독과점해왔다. 지난해 기준 채권 발행 잔액은 1402조원으로 상장사 시가총액(1263조원)보다 크다. 그동안 이들 민간 평가사 3곳이 아무런 방해 없이 주물러 온 시장이다.

채권에 투자하는 연기금, 공제회, 자산운용사 등 기관은 이들 채권평가사가 제공하는 채권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했다. 시중 채권 종목이 2만여개에 달해 직접 평가하기에는 부담이었다. 예컨대 우정사업본부는 채권평가사 2개사의 평균 지수를, 국민연금은 3개사의 평균 지수를 벤치마크로 각각 사용한다.


채권평가사가 외부 관리감독에서 자유를 누린 건, 채권지수 산정의 복잡함 때문이다. 감사원, 기획재정부도 연기금 평가 때 최종 채권 벤치마크 지수만을 참고할 뿐, 이들 지수의 산출 과정을 점검하지는 않았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연구원은 "채권 종목마다 듀레이션과 발행 및 만기가 달라 지수 산정 자체가 매우 복잡하다"며 "같은 지수를 2~3개 채권평가사에서 받아도 수치 차이가 크지 않는 한, 오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채권 벤치마크 지수는 각종 연기금의 자산배분 정책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기금 자산이 400조원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은 자산배분 비율이 1%포인트만 바뀌어도 4조원의 자금이 움직인다. 채권지수가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폐쇄적인 시장은 종종 담합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은 하나UBS자산운용과 기존 채권평가사 3사에 '기관경고'를 내렸다. 채권평가사 3사는 하나UBS자산운용 펀드에서 손실이 났음에도 실적이 좋은 것처럼 평가를 왜곡했다. 이번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채권지수 오류 사건도 채권평가사 과점의 결과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 상황 개선을 위해 금융당국의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위원회가 채권평가사 등록인가를 해주는 수준을 넘어, 보다 본격적으로 채권평가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 임원은 "금융위나 금융감독원도 현재 채권평가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채권평가사들이 기관경고를 받았는데도 영업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1년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와 시중 은행들이 주주가 돼 설립한 에프앤자산평가가 4번째 채권평가사로 출범했지만 아직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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