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아빠! 내가 요즈음 스트레스가 많아. 애들하고 갈등도 커지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벌써부터 스트레스는?'라며 속으로 '참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들어봐야 했다.
"어떤 갈등인데?"
"한 가지만 말해 보면 친구 생일 때 나는 치킨을 먹고 싶은데 다른 애들은 자장면이 먹고 싶은 거야. 그런데 애들이 먼저 지들 끼리 자장면 먹기로 다 결정해 놓고 나한테 '넌 뭐 먹고 싶은데?'라고 묻는 거야. 미리 다 정해놓고는 나한테 묻는 거, 그거 이해가 안돼!"
"......"
14일 세종청사에서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갈등 경영'에 집중됐다. 여·야를 떠나 갈등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정부의 대책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부가 69개의 갈등 과제를 선정해 해결하겠다고 나섰는데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는 지적이었다. 갈등 경영이 아니라 '갈등 조장'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밀양 송전선로 갈등이 사례로 거론됐다. 공사를 강행해 놓고 이후에 주민들을 설득하고자 나섰는데 이게 무슨 갈등 관리냐고 따진 위원들이 많았다. 먼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게 필요했는데 '무조건 밀양강행→주민 설득'으로 순서가 뒤바뀌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는 해석이다.
정무위원들은 특히 최근 국토교통부와 관련된 국책사업에서 갈등이 많이 빚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나라 곳간이 텅텅 비면서 국책사업의 경우 민자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뒷짐만 지고 주민과 민자사업자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행복주택 건설 사업과 민자 고속도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역별 공청회나 주민설명회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발표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제2영동고속도로의 경우 공사 구간마다 레미콘공장과 파쇄야적장 등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강행하고 있다.
주민들이 국토부와 환경부 등에 민원을 제기하면 "우리 소관 아니다"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국책사업의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서 피해 지역주민과 소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갈등 조정이 이뤄지기는 커녕 '이미 다 결정해 놓고' 우리는 아무 책임 없다고 손을 놓고 주민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민자사업자와 주민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토교통부 광역도시도로과장은 최근 민자고속도로에서 불거지는 주민과 사업자간 갈등을 두고 "서류를 보면 아무 문제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갈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피할 수 없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갈등은 일어난다. 갈등은 피하는 게 아니라 적극 부딪혀 대화하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갈등 조정은 서류에 있지 않고 현장에 있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굴리는 게 아니라 현장에 나가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갈등은 해결된다. 서류는 언제든 조작이 가능하지만 현장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갈등 해결의 시작은 현장에 있고, 갈등 해결의 끝도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관련 공무원들은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