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날 닮았다는 것. 즐거울 수도, 혹은 두려울 수도 있다. 내 어떤 점을 닮았을지에 따라 그렇다.
친박 핵심이라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켜보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감정을 느꼈을 법하다. "날 닮은 사람이다."
입이 무겁다. 소신 있다. 약속을 중시한다. 박 대통령과 진 전 장관의 공통점이다.
진 전 장관이 박근혜정부 초대 복지부 장관이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임기 초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선 누구보다 소신 있게 대통령의 뜻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박 대통령이 여당 내 일부 불편한 여론(친박이 아니다)을 알면서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진 전 장관을 요직에 앉힌 이유이기도 하다.
2004년 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의 이른바 4대 법안을 두고 극한 대치를 벌인 바 있다. 그는 김덕룡 원내대표, 이부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4자 회담'을 열고 쟁점 법안에 대한 협상을 벌인 바 있는데 당시 여당 측 인사들은 회담 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연성 부족을 꼬집은 말이지만 박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진 전 장관은 어떤가.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 마이크를 잡고 당위성을 설파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그는 반대했다. 지난해 당내 경선과정에서 그는 끝까지 박 대통령의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재오 의원의 국회 재입성에 진 전 장관은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원칙과 소신'의 코드다.
정치인 출신인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허태열 전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모두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청와대와 정부에 발탁됐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과 그간의 정치적 행보를 감안하면 진 전 장관은 이들에 비해 보다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믿었던 만큼 짐이 됐다. 여성인턴을 성추행한 윤창중 사건은 돌발 변수였다 하더라도 항명(抗命)이라고까지 불리는 이번 진 전 장관 사태는 대선 공약 후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로 매듭짓기 어려운 국면이다.
기초연금 논란 과정에서 보여준 진 전 장관의 처신을 두고 박 대통령은 '책임감'과 '사명감' 부족으로 그를 비판했지만 진 전 장관은 "이건 장관이기 전에 제 자신의 양심의 문제"라며 박 대통령의 무기인 소신으로 맞섰다. 향후 박 대통령의 대야, 대국민 설득 작업이 녹록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최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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