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핀란드 기업인인 비요른 왈루스(Bjorn Wahlroos.60)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사람이다. 그는 핀란드 은행인 노르데아와 금융서비스 그룹 삼포그룹, 종합 임산 및 제지회사 UPM 키먼 등 세 기업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그는 대학 교수로 활동하다 금융업에 뛰어들고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경영자로 변신해 이론과 실물을 겸비한 경영자로 꼽힌다.
왈루스 회장은 핀란드 경제가 침체에서 간신히 벗어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부채축소보다는 지출을 늘려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왈루스 회장은 지난 23일자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케인즈식 경기부양론'에 대해 "이미 1976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제임스 캘러헌 총리가 당 연찬회에서 정부 지출이 경기침체 탈출방안이라는 생각은 타당성이 없다고 밝혔다"면서 "돈을 써서 위기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핀란드가 유로존(유로사용 17개국)에서 긴축정책의 전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핀란드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고 있고 간판 기업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 부진으로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해야 할 만큼 전체 경제사정은 썩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핀란드를 비롯, 노르웨이와 스웨덴 북유럽 3국이 이웃한 덴마크와 달리 최근의 금융위기를 겪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왈루스 회장은 "은행가와 중앙은행가,정치인이 모두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핀란드 등 3국은 1992년 금융위기를 당했다. 1980년대 지나치게 성급하게 금융규제를 완화한 결과 혼이 나 단속을 단단히 해 20년 뒤 똑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피했다는 주장이었다.
왈루스는 골수좌파에서 핀란드 제일의 자본주의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핀란드 내 스웨덴어를 구사하는 소수 민족 출신인 왈루스는 74년 유럽 명문대학인 헬싱키 경제대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79년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다음 85년까지 이 대학 강단에 섰다. 그는 미국 브라운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의 켈로그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왈루스 회장은 "대학 2년 때 극좌파 정치를 대하고 4년 동안 내내 '혁명'에 매료됐다"고 털어놨다.그는 "주변 사람들이 스탈린주의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홀연히 깨달았다"면서 "제가 틀린 편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상 전환 이유를 설명했다.
85년 유니온은행의 이사직 제의를 수락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88년 UBF은행 투자은행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92년에는 아예 이 은행 투자은행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리고 다시 이 은행을 핀란드 최고의 인수합병 자문회사인 '만다툼'으로 변신시켰다. 98년에는 인터뱅크와 합병해 헬싱키 증권거래소에 상장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실물 경제로 진출했다. 그는 자기의 은행그룹을 2000년 삼포 레오니아와 합병하고 합병 회사의 대표이사 겸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여기서 그는 결단력을 발휘했다. 두 달 만에 임원의 절반 정도를 잘랐다. 온순한 곰 인형 '테디 베어'라는 그의 별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호하고 신속한 결정이었다.
그는 9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다 2009년 당시 북유럽 지역의 최대 보험회사이며 북유럽 최대 은행인 노르데아의 주요 주주사인 삼포그룹의 지주회사의 회장으로 물러났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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