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파생상품, 세계1위서 11위로 추락
[아시아경제 김소연 기자]'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때 자본시장의 총아로 각광받던 ELW 시장은 현재 거의 고사직전에 몰려 있다. ELW 거래규모는 2년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융당국이 ELW 상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입했다면, 시장 자체를 죽일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야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개 증권사 대표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기소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은 증권사들에 스캘퍼 전용 별도 주문체결전용시스템 제공 등 ELW 불공정거래 혐의를 적용했다.
ELW는 특정 기초자산을 일정 미래시점에 약속한 가격으로 사고 팔수 있는 권리를 갖는 유가증권이다. 지난 2005년 말 개인투자자들에게 위험회피(헤지) 거래를 쉽게 하고 주가 하락에도 베팅할 수 있게 하는 등 투자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스캘퍼 사태가 터지면서 ELW시장이 소란스러워지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 유동성공급자(LP)호가제한제도를 주축으로 한 강력한 규제카드를 꺼내들었다.
LP호가제한제도는 LP의 매수ㆍ매도호가 스프레드를 8~15%로 벌리고 시장의 스프레드(매수ㆍ매도호가 차이)가 15% 미만인 경우 호가제출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ELW 가격폭을 넓게 벌림으로써 사실상 시장 조성자인 LP의 손발을 묶는 한편, 호가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 75원 미만의 극외가격을 중심으로 매매가 형성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ELW 규제를 견디다 못해 LP들도 시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분기 24개사였던 LP는 현재 18개사로 대폭 줄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ELW 월별 거래대금은 2011년 6월 30조2395억원에서 지난달 2조4719억원으로 2년새 10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파생상품시장 규모도 덩달아 축소됐다. 올 상반기 국내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은 4억2900만 계약으로 세계 11위에 머물렀다. 2011년 세계 1위의 위상에서 2년여 만에 10계단이나 추락한 것이다.
ELW 규제는 상호보완관계인 주가연계증권(ELS)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ELS 발행사는 장외에서 옵션을 매도하고 ELW 발행사는 이 옵션을 매수해 헤지를 하는데, ELW 발행이 줄자 ELS 발행사 역시 헤지할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5조5916억원에 달했던 ELS 발행액은 지난달 2조4315억원으로 반토막났다.
2년여가 흐른 지금, 12개 증권사 대표들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규제책은 여전히 ELW 시장을 옥죄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업계는 금융당국이 ELW의 순기능에 주안점을 두고 시장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그동안 ELW를 통해 시장 하락 위험을 헤지하고 소액으로도 비싼 종목에 투자하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보는 등 다양한 투자기회를 얻어온 게 사실이다.
한 증권사 담당자는 "ELW와 비슷한 구조인 옵션은 그대로 두고 ELW만 규제를 하는 것은 시장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일침을 가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ELW시장의 건전화 방안이 나온 뒤 고점대비 거래대금이 95% 수준으로 급감, 현재 ELW를 과도한 투기상품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특히 ELW 시장 침체는 현물 등 관련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제 합리적 규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nick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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