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업 찌르는 '손톱 밑 가시'
갑자기 부친喪 당한 가업 상속인의 황당한 분노
상속세율 30억원 이상 50%…호주·캐나다는 아예 없어
매출 3000억 넘는다고, 상속세 공제 안 돼 고스란히 300억 물 판
세금 낼 돈 없으면 주식·부동산 처분…끝내 회사 팔기도
[특별취재팀=이은정 기자, 이지은 기자, 박혜정 기자, 이정민 기자]
#1. 가업을 잇기 위해 2011년 4월부터 부친 회사에서 근무한 A씨. 그는 경영수업을 받던 중 지난해 6월 대표인 아버지가 암으로 별세하자 슬퍼할 틈도 잠시, 거액의 상속세를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현행법상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상속 개시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해야 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 일이 예고하고 생기는 것도 아닌데 현실성 없는 규정이 아직도 그대로"라며 "상속세 부담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잊게 했다"고 하소연했다.
#2. 경기도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플라스틱 금형 전문 업체 B는 직원 1000여명의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지난해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1980년 설립된 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 업체 대표는 가업승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으면서 상속공제 혜택을 못 받아 상속세만 300억원 가까이 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성장을 멈춰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 초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중소ㆍ중견기업의 가업승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뜻을 밝혔지만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상속세 내려다 회사 휘청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상속세 및 증여세다. 상속인의 사망을 기준으로 사망 전 재산이 이전될 때 부과되는 것이 증여세이고 후에 부과되는 것이 상속세다.
현행 세법상 최고 상속세율은 50%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최고세율인 26.3%의 2배에 달한다. 가령 100억원을 물려받으면 5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최고세율을 가진 곳은 일본(50%)과 미국(55%)뿐이다. 영국ㆍ프랑스(40%), 독일(30%), 대만(10%), 아일랜드(5%) 등은 세율이 낮다. 호주·캐나다·포르투갈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현금 자산이 부족한 중소기업들로선 주식이나 부동산 처분으로 상속세를 마련한다. 이 때문에 회사를 정리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온다. 가업 승계 의미가 변질되는 셈.
가업승계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동양종합식품 역시 상속세 문제로 골치를 앓은 바 있다. 현금 자산이 없던 강상훈 대표는 14억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본인 소유 빌딩까지 팔았고 결국 상속 주식 가운데 일부를 세무서에 현물 납부했다. 그 후 물건을 되찾기까지 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강 대표는 "상속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4개월간 세무조사를 받고 감당하기 버거운 상속세를 부과받았다"며 "상속세는 기업의 존망을 결정지을 만한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자동차부품 제조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C 업체 최고경영자(CEO)도 가업승계 문제로 고민이 크다. 이 회사 대표는 "최근 5년 동안 법인세 등 890억원의 세금을 냈는데 지금 지분을 증여한다면 400억원의 상속세를 더 내야 한다"며 "내가 만약 잘못된다면 상속세 때문에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상속 증여세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자 편법 증여방법을 모색하는 곳도 나온다. 대표적인 방법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뜻하는 일감 몰아주기다. 실제 국내 한 식품 장수기업도 유통계열사가 제조계열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가업승계를 준비하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 논란에 걸려 곤혹을 치렀다.
◆까다로운 가업승계 공제조건
정부가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7년부터 기업들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공제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공제를 받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고 말한다.
2013 세제개편안만 보더라도 가업상속공제 적용범위를 현행 매출액 2000억원 미만에서 3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했지만 양도소득세 이월과세 항목을 추가해 부담을 가중시켰다.
현행법상 2세대가 상속 공제를 받으려면 공제 신청을 기점으로 가업에서 2년 이상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2년 내 선대가 갑작스레 사망하는 경우엔 상속세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또 1인 상속으로 제한을 두고 있는 것도 손톱 밑 가시다. 이로 인해 자칫 형제 간 법정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 파주에 위치한 매출 300억원대의 D 업체는 지난해 창업주가 세상을 뜨면서 형제 간 승계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형이 30억원을 대출받아 보상을 하면서 다툼은 수그러들었지만 형제 간 상처는 씻을 수 없었다. 한 기업인은 "자녀들의 상속 권리는 동등한데 가업 상속을 1인으로 제한하는 제도는 자식이 하나인 사람만 기업을 운영하라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상속공제 혜택을 받게 되면 상속 후 10년간 정규직 근로자 평균 고용 인원을 상속 전의 1.2배(중소기업 1.0배)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가업용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해선 안 된다. 지분도 마음대로 팔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상속 후 7년차 이내에는 가업상속공제 전액을 추징당한다. 8~10년차는 90~70% 추징한다.
이런 상황에 추가된 양도소득세 이월과세는 기업인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이 과세는 가업승계를 받은 자녀가 향후 자산 일부를 매각하거나 경영난으로 회사를 처분할 때 선대 때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해서도 함께 양도소득세를 내는 것이다.
이 법이 적용되면 세 부담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20년 전 창업주가 1억원에 취득한 주식의 가치가 가업승계 후 100억원까지 상승하고 이를 상속인이 150억원에 양도했다면 현행법에선 차익인 50억원에만 양도소득세율 11%(중소기업, 지방세 포함)를 적용해 5억5000만원만 내면 됐다.
그러나 세제개편안에 따라 피상속인 보유 당시 발생한 양도차익(99억원) 중 가업상속 공제를 받은 부분(70%)에 대해서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된다. 양도세가 13억1230만원으로 개정 전과 비교해 7억6230만원 증가하는 것이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승계 친화적인 조세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면서 "엄격한 가업상속 공제 요건을 완화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상속세를 완전히 면제해주는 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이지은 기자 leezn@
박혜정 기자 parky@
이정민 기자 lj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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